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란 Oct 07. 2020

한국이 너무 싫어서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부치는 편지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한 때는 이 말이 맞다고도 믿었고, 한 때는 틀리다고도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글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도망쳐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나는 있다.

나는 한국이 너무 싫어서 도망을 쳤었다. 그때의 나에겐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마음이 너무나도 지옥 같았고 한국에 있는 매 순간순간이 나를 옥죄는 것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버티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도망치자'고.


한국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다수의 생각과 다르고, 내가 하는 행동들에 많은 시선이 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지금도 한국은 유난히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온갖 시끄러운 사회적 상황들과 나를 향한 그런 시선에 지치고 지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중에 하나는 한국의 교육제도였다. 이 이야기를 여기서 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기 때문에 다음에 이 주제로 글을 작성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학생들을 획일화하고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교육에 진절머리가 났다. 벗어나고 싶어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세계여행에 관한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내 안의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나를 그 영상들로 이끌었던 것 같다. 나의 온 생각을 사로잡았던 세계여행은 나를 도망치자는 결심으로 이끌었다.


중학교 때, 수능을 보는 대신 세계여행을 택한 사람의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페이스북이 흥하던 시절이었고 지금처럼 유튜브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책으로 출판될 정도로 꽤 긴 장편의 글이었는데 그 글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에 순식간에 글을 다 읽었다. 글을 읽고 난 후에도 그 감정은 무의식 중에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들과 억압 속에서의 분노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 맞물려 나 또한 수능을 보기 한 달 전 폭탄선언을 했다. 


수능을 보지 않고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그렇게 나는 호주로 떠났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싶진 않았다.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쓰고 싶고 듣고 싶었다. 영어 실력도 지금보다 더 늘리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독학으로 일정 수준의 레벨까지 오르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분들의 방식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 중국에서 살면서 외국어를 배우는데 가장 좋은 건 그 나라에 살아보는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도 본인이 의지만 있고 여력이 된다면 본인이 배우고 싶은 언어를 쓰는 나라에 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택했고 영어를 쓰는 나라들 중에서 호주를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급이 가장 높으니까. 


그렇게 한국에서 도망쳐온 나는 약 1년가량을 호주에서 지냈다. 도망을 선택한 나의 삶은 어땠을까? 정말 천국은 없었을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천국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분들이 실망할 것 같다. 뭐야 결국엔 본인도 모르는 거네 라고. 하지만 정말 사실이다.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 해방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는 감정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공항에서 나와 태어나서 처음 봤던 푸르른 하늘과 바다 내음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러한 것들이었다. 문학 표현에서나 봤던 광활한 바다와 같은 파아란 하늘이 이런 것을 말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글은 쓰는 지금도 그 기억들을 떠올릴 때마다 모든 순간들이 테이프를 되감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생전 처음 보는 산이 보이지 않는 언덕과 높은 아파트와 벽돌색의 빌라들이 아닌 하나의 집들이 파란 하늘과 대조되면서도 조화롭게 서있었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물론 행복했던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외딴 타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을까?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달랐다. 혈혈단신 외국에 떨어져 처음 가보는 영어권 국가에서 무려 일을 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스트레스도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한국에서 떠날 때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나갔기에 이를 악물고 살았다. 초반에는 악으로 독기로 버텼다. 포기해야겠다 돌아가야겠다 라는 선택지가 나에겐 없었다. '안되면 돌아가지 뭐'라는 생각이 단 1퍼센트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내가 책임져야만 했다. 그때는 돌아오게 된다면 실패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 정말 독하게 버텼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스스로를 몰아부쳤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때는 그랬다. 그래서 더 잘 버틸 수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그곳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한국에서 겪은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비교적 덤덤하게 넘길 수가 있었다. 경험해보는 건 대부분 생전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고 슬플 때도 분노할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들이 이 모든 아픈 기억들을 압도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이 글을 클릭한 사람은 최소한 지금의 삶에 불만이 있거나 한국이 나랑 안 맞다고 생각하거나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마음이 지옥이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지옥처럼 느껴진다"라고. 이 또한 맞는 말이다. 마음이 지옥인데 어디가 천국처럼 느껴질까.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그것 또한 지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나 또한 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아마 세상의 대부분의 고민들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 있다. 정답 또한 본인에게 있다. 내 경험을 통해서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도망을 칠지 말지 선택권은 본인에게 있다. 

누군가는 결국 너 또한 천국이 없었던 것 아니냐 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말이 허황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도망친 곳에 천국이 없으면 어떤가. 중요한 건 나의 의지로 도망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는 '도망'을 선택했다.

용기를 가지고 했던 경험들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도망친 곳에 천국이 있든 없든 충분히 도망쳐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내 삶인데 안 될게 뭐가 있을까? 내가 도망치고 싶으면 치는 거고 아니다 버텨볼 만하다 싶으면 버티는 거다

나도 처음부터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마음으로는 도망치고 싶었는데 나 자신에게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어. 도망친다고 달라질 건 없어.'라고 내 진심을 억눌렀던 적이 있다. 지금의 나는 그 또한 하나의 지옥일 뿐이었음을 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이 없더라도 내 마음을 지옥에 두진 말자.

우리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