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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란 Oct 22. 2020

20살, 내가 대학이 아닌 세계여행을 선택한 이유(2)

조건부 허락과 10대의 종지부

부모님께서 세계여행을 가는 걸 허락해주셨다. 어쨌든 나는 갈 생각이었지만.

수능은 그냥 봤다. 어차피 원서 접수는 하지 않더라도 이미 응시료도 냈고, 내 3년 동안의 생활을 종지부를 찍는다고 생각하고 그냥 보러 갔다.


그 날, 시험장에서 아마 내가 제일 여유로웠을 거다. 그래도 관성이 있는지 그동안 공부한 만큼 시험은 보고 편안하게 즐기고 왔다. 점심시간에는 학교에서 싸준 도시락 맛있게 먹고, 여유롭게 산책하다가 수능이 슬슬 끝나갈 때쯤, 입가에 웃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 감독관분들께는 이상한 애처럼 보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너무 신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이면 다 끝이 난다는 생각에 정말 모든 게 즐거웠다.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고, 제일 먼저 건물을 나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이 이렇게 후련한 날이 없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과정을 완주했고 내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의 생각만 맴돌았다.


이게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 내 인생은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것.


차근차근 여행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선 경비가 필요했고 내가 생각한 방법은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모을 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내가 봤던 루트 중에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세계여행을 떠난다. 이게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국가를 정해야 했다. 나는 일단 영어를 쓰는 곳을 가고 싶었고 또 돈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 아일랜드를 제치고 호주를 택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시급이 가장 높아서 끌렸던 것 맞다. 여행 갈 때 돈이 많으면 좋은 게 좋으니까.


일단 야심 차게 가겠다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막막했다.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면 또 준비 비용이 필요했다. 비행기표, 초기 정착비용 등등. 그런데 나 알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부끄럽지만 19살이 되도록 내 손으로 돈 한 번 벌어본 적 없었다. 해본 건 봉사활동 밖에 없었다. 귀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지만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다. 일단 알바부터 구해야 했다. 수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알바 사이트를 통해 집 근처 구인 공고에 이력서를 넣으며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간, 일을 다 따져가며 넣었다. 그런데 딱 수능 끝나고 나처럼 일을 구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아무 경력 없는 어린애를 써주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금방 마감되었거나 인터뷰를 보러 가도 떨어졌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되는대로 이력서를 다 넣었다. 그랬더니 조금씩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택배 알바를 시작했다. 운전면허도 따기 전이었으니 우리가 아는 택배 기사일이 아닌 큰 아파트 단지에 택배 기사분이 물건들을 배달해주시면 내가 집집마다 배송해주는 그런 일이었다. 정말 겁도 없이 시작한 것도 있지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감사하게 시작했다.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한 뒤 엄마의 인맥으로 감사하게도 오전에 또 다른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수능이 끝나고 나는 오전에는 매장에 가서 물류 정리를 하고 오후에는 택배 알바를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용돈만 받으며 살아가던 내가 선택한 삶을 온전히 책임지기 위해서 한 일은 정말 쉽지만은 않았다. 지각을 일삼던 내가 시간 약속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멀쩡하던 택배가 내가 드는 순간 안의 내용물이 떨어져 정말 난감했던 적도 있다. 또 내가 가기 전에 택배를 도난 당해 경찰을 불러야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정말 현실은 냉정하고 차갑구나 라는 것도 느꼈다. 그래도 그때마다 나의 곁에는 좋은 분들이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같이 일하던 분들은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셨고 정말 감사하게도 모든 게 처음인 나를 이해해주셨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때의 경험들은 나중에 호주에 가서도, 지금까지도 나의 큰 자산이 되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참 감사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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