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란 Oct 02. 2022

10월의 어느 언저리에서

어느 가을날의 불안

완연한 가을이다.

초록빛으로 반짝이던 나뭇잎들은 어느새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뜨겁게 내리쬐던 햇살을 대신하듯 차갑고도 선선한 바람이 옷 틈새를 파고든다.


아침에 일어나 짧게 감사일기를 쓰고 명상을 한다.

엄마와 함께 아침을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시며 잠시 멍을 때린다.

그러다가 잡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면 가만히 앉아있는 게 괴로워져 노트북과 책을 챙겨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한다.


기쁨이 50이고 슬픔이 -50이라 한다면 요즘 나의 기분은 50도 아니고 -50도 아닌,

0도 딱 그 언저리이다.

마음의 쓰레기들은 비우고 나면 머릿속은 놀랍도록 차분해지고 냉철해진다.

한 달 중에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다.


도서관의 고전 문학 코너에서 서성이다가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뽑아 들고 창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듯 자신의 몫을 다한다.

책을 빌리는 사람, 책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훌쩍이는 사람, 노트북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는 사람, 업무를 하는 사서 분들과 이용객들의 대화가 간간이 들린다.


문득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은 잘 흘러가고 있는 걸까?

짧다면 짧지 않고, 길다면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온 나 자신의 삶 속에서, 어느새 올해는 두 달이 남았고 나도 어느덧 이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같은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어른이 되었나.

그동안의 인생을 반추해본다.

나는 잘 살아왔던 걸까.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흘러갈까. 나의 이십 대는, 삼십 대는 어떻게 보내야 내 인생의 황혼기에서 그래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19살의 나는 상처를 받았고, 사랑을 접었다.

20살의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마음을 닫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조금은 깨우쳤다.

21살의 나는 지쳤고 나의 바닥을 마주했다.

22살의 나는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 바닥이 아니었음을, 그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벼랑 끝에 내몰렸었다. 그러나 그 벼랑 끝에서 떠오르는 밝은 빛을 보았다.

23살의 나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랑을 하려 마음을 열었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답이 없는 인생이다. 정답이 없는 인생.

한 때는 삶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바쁘게 쫓아가며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나의 삶은 이미 다른 궤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뒤돌아 본 나의 삶은 의미가 있는 삶이었을까?

나는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했다고 한 점 망설임 없이 얘기할 수 있으려나.


나의 이런 어디 내어놓기 부끄러운 마음들을 가슴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용기 내어 꺼내 본다.

그리고 나와 일면식도 모르는 당신과 마주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쉽지 않다.

마주하기 어려운 상처들을 끄집어내고 다시 마주하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다.

내 이야기를 꾸준히 읽어 주고, 나의 아픔과 우울과 고통에, 행복과 평온에 공감을 해주는 당신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심연 속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빛, 여명을 기다린다.




작가의 이전글 팔자에도 없는 서울살이를 하게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