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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과 실친 사이

by 섬원

일면식도 없는 팔로워 말고 선망하며 지켜보는 인플루언서 말고 잠깐의 시간을 공유했지만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인스타에선 친구인 사람을 인친이라고 해보자. 보기보다 이들이 나랑 얕은 관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관심사가 비슷할 땐 반갑기도 하고 각자의 시각으로 다른 분야에 대해 포스팅하는 내용들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의례적으로 눌러주는 좋아요라지만 그런 조그만 관심도 없는 실제 인연보다 힘을 준다.


이 사람이 미친 건가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간혹 만나자고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십년 전 잠깐의 대화를 나눈 후론 본 적이 없는데 이제와 만나자고? 그치만 그 인친과 내가 정말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도 얼추 같다는 확신이 드는 때가 있는 걸. 남녀불문하고 하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친은? 나의 인간관계를 털어놓자면 연상 연하 동갑 관계 없이 1대 1이 잘 맞고 단체는 힘들다. 1대 1로 만났을 때 침묵은 완전 허용하지만 할 말을 쥐어짜야 한다면 그리고 내가 한 말들이 어디까지 가 닿을까 걱정해야 한다면 그 관계는 의도치 않게 멀어진다. 그래도 여기까진 맞출 수 있는 단계.



앞에선 웃고 뒤에선 비웃으면서도 굳이 친하고자 하는 암적인 존재부터 정도를 모르고 훈계질하는 훈장님 형 인간, 잘해줄 수록 예의를 잃는 둘리형 인간 등 별별 군상들을 다 겪어보며 관계에 대한 의지를 잃고 앞으론 피상적인 관계 밖에 없을 거란 절망에 빠질 때가 왕왕 있었다.


사실 또 그게 그렇게 절망스럽진 않다. 왜냐면 그럴수록 관계에 대한 생각은 아주 잠깐이고 빠르게 나에 대한 것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싫은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는 반대급부적 반응에서다.



원래도 내 관심은 오직 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써보는 게 신기할 정도로 생각도 노력도 싫은 이기적인 내 모습이 요즘…좀 좋다. 남이 뭐라든 귀닫고 나와 너에게만 집중하는 삶. 너의 범주는 생각보다 좁으며 앞으로 더 좁아지겠지.


난 이러하니 네가 날 이해해줘라는 중2병스러운 태도가 아니라 이해하지 말고 그냥 가줘에 가깝지만 둘 중에 뭐든 이런 걸 다 뛰어넘은 관계만이 살아남는다. 그럼에도 계속 하고 싶은 관계. 이런 관계> 인친> 실친 순이라는 건가? 이런 어마어한 인친이 있는 인스타를 어떻게 떠날 수 있겠나. 열심히 또 스토리 올리고 사진 보정하고 해야지. 부끄럽지만 없으면 서운할 인스타그램, 그리고 인친. 그보다 못한 실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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