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묻는 너의 안부가 익숙해질 때가 된 것 같은데, 해가 바뀌어도 쉽지 않다. 또 한 번의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 그럼 우리는 또 겹겹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나의 시간을 손으로 짚어본다. 까슬한 시간, 미끄러운 시간,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 오돌토돌 촉감이 살아나는 시간.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던 시간에 정작 마주쳐야 할 얼굴이 없음을 알고 사뭇 놀란다.
감정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 무뎌지기도 하니까, 그렇게들 된다고 하니까, 나 역시도 그러기를 바라며 잔잔한 흐름에 올라타 부지런히 걸었다. 교차되는 두 발을 시계추 삼아 걷다 보면 너를 잊지는 못해도, 무뎌질 줄 알았다. 조금은 흐릿해져 선명한 시간만이 남아있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한 모금 숨을 돌리기 전까지 몰랐다.
분주한 걸음 속에 광막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여전히 나에게 묻는 너의 안부를 핑계 삼아 줄 곧 너의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꼭, 죽고 싶은 것처럼 걷는 내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