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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수 Oct 05. 2022

생각이 많아질 땐, 양치질

정지: 멈추는 방법 연습하기

양치질을 한다. 한 번에 딱 하나만 하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양치질이다. 밥 먹을 때 밥만 먹는 건 세상에서 제일 힘들던데 이상하게 양치할 때는 양치만 하게 된다. 거울을 통하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영역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라서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면 일부러 양치질을 한다. 양치질은 복잡하고 산만한 정신을 잠시 멈추게 한다.


요즘 나는 이미 주어진 것들, 이를테면 곁에 있는 사람이나 지금 하는 노동 혹은 하기로 마음먹은 공부에 만족하지 않고 자꾸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고 있다. 진짜 '내'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갈망, 더 멋진 일에 뛰어들고 싶은 환상,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나를 지탱하던 소중한 것들을 잊은 채 다른 세계 근처에서 기웃거린다.


양치질을 하며 숨을 고른다. 산발적이면서 다발적으로 올라오는 생각에서 잠시 벗어난다. 멈추지 않으면 관성에 이끌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저기 있는 괴로운 상태만 지속될 뿐이다. 양치질을 끝낸 뒤엔, 한결 가볍게 생각을 다잡는다. 당분간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마을 밥상에서 일하기로 했고 금요일에는 공익 분야 인턴 기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토요일에는 철학 공부 모임을 한다. 이 모든 것을 처음 선택했을 때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곁눈질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지? 그런 것들을 왜 하게 되었지?


1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에 간편하고 자극적인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데 급급하는 대신, 동물과 나를 해치지 않는 제철음식을 배우려고 마을 밥상에서 일하고 싶었다. 최소의 돈으로 사는 방법으로 떠올린 게 내가 먹는 것부터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든 생명을 지키는 마을 밥상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기자 양성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익숙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낯선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배우려고 철학 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아직 배워야 할 게 이렇게나 많은데 이것부터 제대로 해내지 않고는 다른 것도 잘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여느 때와 같이 잠시 파도가 왔을 뿐이고 유연하게 그 위에서 놀기 위해서는 하얀 거품이 싹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입 속 가득한 치약 거품을 뱉으면 왠지 마음의 거품도 걷히는 기분이다. 퉤-!


다시, 양치질을 한다. 비로소 고요해진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다. 하고 싶은데 두려운 건지, 하고 싶지 않은 건지. 하고 싶다면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자꾸 한눈팔지 않고 지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는 도시의 속도를 가로질러 나만의 호흡으로 살아간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찬란한 듯 보이는 불빛의 유혹 속에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결로 살아간다는 건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남들이 인정하지 않거나 오히려 얄궂은 반응을 보여도 내가 선택한 일을 우직히 해나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첫 마음을 떠올린다. 어떻게 변했는지 떠올린다. 이미 그 길에 들어선 이상, 용기와 의지는 점점 가뿐해진다.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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