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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은 Dec 08. 2020

얼굴로 대화하는 어떤 사람의 좌절

나의 코로나 블루 : 리액션을 덮어버린 마스크 

나는 코로나 시대를 잘 이겨내고 있는 사람 중 하나여야 했다.


왜냐면 일하거나 이동하는 중에는 마스크를 거의 벗지 않는데도 물리적으로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우울감의 원인 중 하나로 꼽는 해외여행 규제도 물론 가고야 싶지만 오히려 매년 의식처럼 행해 온 해외여행 대신 국내로만 촘촘히 여행을 다니며 색다른 만족감을 느꼈다. 주변에 아픈 사람 없이 이 시기를 잘 견뎌나가고 있는 내 일상이 이렇게 힘이 없는지. 마음 하나 가득 찬 느낌이 들지 않는다.

출처: University of Oregon

곰곰이 생각해보니 올해 웃음의 총량이 작년 대비 반절은 줄어들었다. 작년엔 분명 웃는 일이 많았다. 과장 없이 매일매일 웃는 일이 반드시 하나쯤 생겼다. 웃기는 게 있으면 웃고, 웃음소리가 들리면 또 웃고, 대화하는 사람이 눈웃음만 지어도 따라 웃는 나라서 하루 종일 웃는 게 어렵지 않았다.


작년만큼 행복한 일이 많았음에도 마스크를 쓰고나서부터 웃음이 없어졌다. 누군가의 웃음을 목격하며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일도, 누군가의 웃음을 카피해 따라 웃을 일도 사라졌다. 웃을 일이 생겨도 마스크를 쓴 채 웃는 일은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평생을 온 얼굴을 이용해 웃어온 나에게 눈과 소리로만 웃음을 표현하는 일은 제 아무리 웃어도 시원하지 않다.


나의 리액션도 함께 봉쇄당했다. 내가 당신에게 귀 기울이고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공감하고 있어요. 내가 당신과 함께 웃어요. 나는 이 모든 문장들을 내 표정에 녹여내어 얼굴로 말했다. 나같이 얼굴로 대화하려 드는 사람은 다른 이의 표정에도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은 후에야 안정감을 느끼는 나는 코로나 이후 모든 대화가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힘겨웠다. 나의 뜻이 100이라면 94는 잘려나간 것 같아서. 상대방의 6만 나에게 전달되는 거 같아서. 대화의 구멍을 메꾸는 데서 느껴지는 정신적인 피로감이 마스크의 갑갑함을 이겼다. 리액션이 나에게 이렇게 중요한 의미였는지 새삼 깨닫는다.


마스크를 낀 이후 턱이 계속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안 보이는 표정을 삐죽거리며 마스크 밖으로 보이려 하다 보니 본능적으로 표정을 과장하고 있던 탓이다. 어서 빨리 마스크를 벗고 나의 100과 다른 이의 100을 담아 한바탕 신나게 웃고 대화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만든 사람: solidcolours | 제공: Getty Images/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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