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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변호사의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 수기

어쩌다, 캘리포니아 변호사

어느덧 2021년도 거의 다 지나가고 11월.  특히 추수감사절이 있는 11월 이 맘때가 되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 결과를 받아보았던 그 때가 가끔 생각이 난다.  벌써 5년이라니 시간 참..


5년 전 여름, 미국에서 로스쿨도, Barbri 시험 학원도 한번 다녀보지 않았던 내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머나먼 LA까지 와서 3일간 밤잠을 설쳐가며 아등바등 시험을 치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바시험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고 30대 초반의 어린(?) 패기로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세부적인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지만 그 때의 시험을 준비했던 과정에 대하여 이후에 계속하여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과 공유해보고자 한다.  물론 나의 경험담은 그저 수 많은 합격생들 중 한 명의 경험담일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며, 이 글을 보는 분의 입장에서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취하고 나의 실패담은 반면교사를 삼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한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2년 초에 변호사가 되었다. 1년 정도 역삼동과 서초동 등지의 로펌에서 각종 송무를 하다가 사내변호사로 이직한 뒤 업무적으로 국제거래 계약을 다양하게 다루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미 계약법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특히 미국 특허소송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관련 뉴스나 아티클들을 읽다 보면 결국엔 미국 민사소송법에 대해 한국의 민사소송법과 다른 포인트들에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소송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독학으로 미국 계약법과 민사소송법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 결국엔 다른 미국 common law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서 자연스럽게 미국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MBE 문제를 접하기 전까지는 미국법이 이렇게 새롭고 재밌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는 JD나 LLM 학위 없이도 바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주가 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워싱턴 DC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국 변호사 자격만 있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시험을 볼 수 있는 주가 캘리포니아이다.  일리노이는 그 당시 만 5년 이상의 변호사 경력, 워싱턴 DC는 26학점 이상의 학점 이수 등을 요구하였는데 처음 시험을 준비하던 2016년 당시 아직 변호사 경력이 만 5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캘리포니아였다.  그리고 장래에 실제로 미국에 가더라도 캘리포니아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별 고민없이 캘바를 선택하였던 것 같다.


한편 캘바는 General Exam과 변호사들이 응시할 수 있는 Attorney Exam (MBE 면제) 두 종류가 있는데 한국변호사의 경우에는 General Exam에 응시하여야 한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엔 업무로써 영문계약서를 많이 다루긴 했었지만 미국법에 대해서는 전혀 배경지식은 없는 상황이었다.  약 2달 정도 기본법에 대한 1회독을 한 이후에 바로 MBE 문제풀이와 에세이 기출문제 풀이에 들어갔다.  회사생활을 병행한지라 평일에는 퇴근 후 3~4시간 정도, 주말에는 매일 10시간 정도씩 공부시간을 꾸준히 내려고 노력했었는데, 물론 목표를 그렇게 잡았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평일에는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주말 이틀 중에서 하루는 가족 모임이나 지인들의 경조사 등으로 공부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평균적으로 한달에 1~2주는 되었던 것 같다.


"미국 JD 애들은 졸업 후에 2달 정도 공부하고 바시험 붙는다던데?"라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만 믿고 한 6개월 정도 공부하면 나도 붙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자만심에 빠져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갔고 이미 신청해 둔 7월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속으로는 시험준비가 덜 되었다는 불안감이 가득했지만, 기왕 접수한 시험 취소하기 보다는 일단은 가서 미국의 시험장 분위기라도 익숙해지고 오자는 생각으로 7월 시험을 보기 위하여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은 캘바도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2일 시험으로 변경되었지만 그 당시엔 3일 시험이었는데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름 시차를 적응한다고 시험 3~4일 전에 도착한다곤 했지만 잠자리가 바뀌고 긴장이 되는 탓에 시험보는 3일 내내 하루에 평균 2시간 이상을 못잤던 것 같다.  물론 과거에 한국에서 변호사 시험을 5일을 보긴 했었지만 3일 째 되는 날이 쉬는 날이라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던 반면에, 캘바는 3일을 쉬지않고 연속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틀째 시험을 본 저녁에는 정말 넉다운이 될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험을 치룬 뒤 회사업무에 치여 4개월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결과(당연히 불합격!)가 나온 뒤 한 2주 정도 지난 12월 중순부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사실 직장인 분들은 많이들 공감하겠지만, (특히 코로나 시대 이전의)12월은 공부를 하기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회사에는 수험생활 중이라는걸 당연히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 각종 회식이나 송년회 모임 등에 참석을 안할 수가 없었고 최대한 자제를 하려고 했지만 술자리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사실상 12월도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고 2017년 새해가 되면서 진짜 본격적으로 정신차리고 수험생활에 돌입했다.  


내 인생에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었던 시기를 딱 2번 꼽으라면, 단연코 변시(한국 변호사 시험) 전 1달과 캘바 전 1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왠만하면 정시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독서실에 가면, 빠르면 8시 늦으면 9시 정도 되었고 최소 12시 늦으면 1시 반 정도까지는 공부를 하는 생활을 2월 시험까지 대략 50일 정도 하루도 쉬지않고 반복했던 것 같다.  이 때의 가장 힘든 점은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나 시험에 대한 불안감보다도 문득문득 밀려오는 나의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다.  특히 수능과 대학생들 기말시험도 모두 끝난 시기인지라 그런지 독서실이 너무 조용해서 집중에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 외롭기도 하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나 자괴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서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불리한 점이 전업 수험생에 비해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시험에 붙지 않아도 당장 다니는 회사를 다니면 되니까 또는 뭐 당장 먹고사는데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이런 나태한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정말 부단히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시험은 그 난이도나 합격율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는 간절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간절한 문제다.  그리고 그 간절함이 결국에는 다른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이 시험이 어떤 점에서 간절하게 다가왔었나 되돌아 생각해 보면, 나를 믿어준 아내와 가족에게 실망을 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미국이란 새로운 나라에서 도전해보고자 하는 강한 호기심에서 특히 간절했던것 같다.  당장 이 자격증이 없더라도 한국에서 일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심지어 새로운 자격증이 생긴다 한들 일하는 데에 있어서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나 자신을 시험해보기로 한 이상 그 관문을 꼭 통과하고 싶었고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감정을 나눠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이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꼭 내가 왜 이 시험을 붙어야만 하는지 자신만의 간절한 포인트를 찾아보실 것을 권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많은 한국 변호사분들이 나와 비슷하게 캘바를 준비하신 분들이 많았지만 최종 합격까지 하신 분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내가 잘나고 그들이 못나서가 절대 아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준비의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특히 로3처럼 전업 수험생활이 아닌 이상 이 시험이 나에게 특별한 간절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항상 회사 업무와 육아 등에 밀려 후순위로 밀려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없는 시험은 합격부터도 쉽지 않지만 설령 합격을 한다해도 그 자격증의 가치가 나에게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두 번째 시험 역시 무사히 치뤘고, 역시 시험장 분위기를 한번 경험해 봤다고 두 번째 시험에선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수기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이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랩탑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아웃라인 목차를 잡는데만도 엄청 헤맸던 첫 번째 시험과는 다르게 확실히 답안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작성하기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생기면서 훨씬 자신있게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래서 모든건 경험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나처럼 시험을 2번씩 보란 악담은 전혀 아니다.  모의고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미국의 전문 Bar prep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사정이 아닌 대부분의 한국의 수험생들은 모의고사를 경험해보지 않고 바로 실전으로 가려는 경향이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모의고사를 통해 실제로 정해진 시간 내에 시험장과 유사한 압박스러운 환경에서 랩탑으로 답안지를 작성해보고 안해보고의 차이는 실전에서 생각보다 크게 나타날 것이다.


요새도 가끔 한국 변호사분들 중에 캘바 준비를 어떻게 시작할지, 공부는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어디서 시험을 보면 좋을지 등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로 인하여 온라인 응시가 가능했던 작년 7월, 올해 2월과 7월, 3번의 시험이 한국의 응시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 내년 2월부터는 오프라인 시험으로 전환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 멀리 미국까지 와야하는 부담(심지어 시험장들이 LA와 SF 공항과 가깝지도 않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가 용이한 위치도 아니다)과 시차나 음식에 대한 적응 등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장 주변의 숙소와 음식점 등에 대해서도 시험 신청 전에 많은 고민을 해볼 것을 권한다.


아무쪼록 이 시험을 준비하시는 한국 변호사분들 및 모든 분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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