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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 May 21. 2018

콤부차가 익어가는 동안

마이애미에서의 이별

콤부차(KOMBUCHA)

10개월 만에 그의 집 문을 연 것은 내가 먼저였다. 달라스에서 연결 편을 놓쳐버린 탓에 그의 비서는 두 시간이나 나를 기다려야 했다. 내게 마이애미는 늘 그런 곳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곳. 콘도의 리셉션에 맡겨진 키를 찾고 36층 그의 콘도로 올라갔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그는 두어 달에 한 번씩 이 콘도에 체류했을 것이다. 몇 년 전 보았던 마이애미의 야경은 변함이 없다. 나는 TV나 영화에서 마이애미의 장면이 나올 때면 그의 콘도 건물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곤 했다. 해변에 위치한 그 건물이 클로즈업될 때면 그의 집이 있는 36층을 헤아리려 노력했지만 화면은 늘 빠르게 바뀌어 버렸다.


냉장고는 늘 그렇듯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내일 오후에나 도착한다고 했으니 나는 하루를 혼자 보내야 한다. 짐을 내려 두자마자 마트에 간 것은 딱히 할 일이 없어서였다. 냉장고라도 채워야 무언가 덜 허전할 것 같아서였다. 기다림이나 헤어짐에 익숙지 못한 나는 뒤져서라도 할일을 만들어 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먹을 우유와 달걀 그리고 샐러드를 사들고 비어 있는 그의 콘도의 문을 연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유리단지. 누군가가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계심 가득 한 눈으로 온 집안을 더듬는다. 식탁 아래에 장난스레 숨어 있는 그를 발견하고 나는 허탈함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우리는 격정의 포옹이나 반가움을 표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너무나 많은 헤어짐 속에 만들어진 일종의 룰이었다. 격정은 그 크기만큼의 파도로 덮쳐와 그만큼 빠져나간다. 인사를 생략한채  10개월만이 아니라 어제도 함께 한 사이처럼 함께 유리 단지를 딱기 시작한다. 그리고  물을 끓이고 홍차를 우려낸다. 홍차버섯을 나는 연신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버섯도 아닌 주제에 버섯이라 이름 붙여진 효모. 딱딱한 청포묵 같은콤부, 그것이 홍차 버섯이다.

홍차가 식는 동안 우리는 그가 가져온 작은 병의 사케를 함께 나눠 마신다. 그의 아버지가 좋아했다는 그것. 작은 사케잔에 그것을 따라 세 잔씩 마시고 우리는 테라스로 나갔다.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콘도에는 아직도 불이 환하다. 유리 단지를 닦고 홍차를 우려내고 사케를 마시고 우리는 그 테라스에서 끌어안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제도 그제도 자주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의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고 그는 내 원피스의 끈을 내렸다. 빈 속에 들어간 세잔의 사케 때문인지 아니면 말로 하지 못한 격정의 인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린 지붕만 있지 야외와 다름없는 그곳, 반대편 콘도가 아직 불을 환하게 밝힌 마이애미 비치의 콘도 36층의 테라스에서 인사를 나눈다. 긴 비행을 마친 나에게도 그에게도 바닷물처럼 짠맛과 노곤한 냄새가 가득했다. 한차례의 격정이 지나간 후 무안해진 내가 꺼낸 말도 목이 마르다는 말이었다. 그의 뒤통수를 잡고 그의 몸을 덥고 그의 입술과 목덜미를훝었던 나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가 내민 것은 이제 미지근하게 식어 버린 홍차.

그리고 우리는 알몸으로 유리 단지 안에 홍차를 붓는다. 설탕을 넉넉하게 넣고 그 위에 콤부를 띄운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불투명하고 말랑한 홍차 버섯. 콤부는 설탕을 양분 삼이 홍차를 배양할 것이라 했다. 우리는 홍차가 콤부차가 되는 동안 함께했다. 내 말은 이번에 함께한 기간은 콤부차가 태어난 기간만큼이라는 뜻이다. 아침이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고 커피를 내려 아이를 깨우듯 그의 엉덩이를 토닥거려 식탁으로 불러 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마이애미의 빛을 따끔거릴 정도로 등에 받으며 손을 잡고 걷기도 했다.


반나절을 걸으며 우린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당근 주스를 마시고 길 모퉁이의 수제 초콜릿 집에서 짓궂게 한 조각의 초콜릿을 사자 마자  종업원에서 앞에서 서로의 입술로 조각내 먹기도 했다. 밖에서 먹는 밥이 지겨워질 때면 나는 고기를 굽고 샐러드를 만들어 그를 식탁에 앉혔다. 가끔 그는 사람을 만나러 갔는데 그런 날 생각보다 늦어지면 그는 들어와 라면을 끓여 달라고 했다. 그 남자 식의 사과 인사다. 그리고 네가 있을 때만 이 주방이 역할을 한다 했다.

하루 종일 하얀 침대 위해 있던 그날 저녁, 우리는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주방 한가운데 두고 주방 비우기에 전념했다. 그의 룸메이트가 남겨 두고 간 굴소스와 후추와 참치캔과 중국어가 가득 적힌 쌀면들. 누가 더 유통 기한을 넘긴 물건을 찾아내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것이 시들해지면 우린 U2의 노래를 틀어 놓고 서로를 안고 휘청였다. LP 판이 다 돌아가도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고 내 양발은 아기의 그것처럼 그의 발 등 위로 올라가 한동안 발을 맞추어 거실을 배회했다.


나는 그와 이 거실에서 이별했었다. 내 말 뜻은 마이애미에서의 이별을 말한다. 햇볕이 쏟아지던 낮 2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알몸의 그를 두고 나는 그의 집을 나왔다. 나는 그를 절대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의 품에 안겨 춤을 춘다. 밤은 내려앉았고 LP플레이어는 한 면의 모든 곡을 연주하고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춤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 저녁 맛보던 콤부차가 마냥 달달한 홍차 맛에서 시큼함을 더해갔다. 그동안도 우린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사랑을 하고 밥을 먹고 입 안의 사탕을 부수어 나눠 먹었다. 콤부차가 익어가는 2주 동안. 그리고 콤부차가 완전히 익은 2주가 되던 날 우리는 발효된 콤부차 한잔을 마시고 남은 차를 모두 버리고 다시 유리 단지를 씻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헤어졌다. 톡 쏘던 콤부차, 아직 살아 있던 홍차버섯과 남아 있던 콤부차, 씻어낸  비어 있는 유리단지. 우리는 그렇게 또다시 헤어졌다. 그러나 몇 년 전처럼 나는 그를 버리듯 남겨 두지도, 울지도 않았다. 다만 더 깊이 이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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