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책으로, 북리뷰
2019년 가장 주목받았던 영화 '기생충'에 대한 한줄평에서 시작된 "문해력"에 대한 논쟁이 인터넷 상을 뜨겁게 달구었다. 일반인들이 알기 힘든 단어를 연속으로 쓴 것은 있어보이려는 허세라는 요지의 논란이 중심적인 내용이었는데, 내가 쓰는 문장과 단어에 대한 한국 대중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이슈였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단어나 어려운 문장을 접했을 때 그것에 대한 이해하려고 시도하기는 커녕 허세로 폄하하는 태도가 논쟁의 쟁점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글로 먹고 사는 이들이 느꼈을 모종의 허탈감이 씁쓸하게 전해졌다.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인 문해력은 흔히 독서로 키워진다 알려져있고, 나름 책을 가까이 살아온 만큼 문해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요즘들어 내가 정말 문해력이 높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잦아졌다.
누군가 최근 가장 깊이 독서를 했던 기억은? 이라고 묻는다면 초등학교 삼학년 겨울방학 마지막 잎새를 시작으로 세계명작 전집을 하루에 두권씩 읽어제끼며 새로운 읽을거리를 갈구했던 기억을 소환해낼만큼 최근에 책읽기는 겉도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해왔다. 대학 입시 이후 소설위주의 잘읽히는 글을 읽다가 격무에 시달리며 한동안 책을 가까이 못했고 최근들어 공부하는 자세로 책읽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훑어읽기 (skim)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태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실재로 근래 읽은 책들은 저자와 제목조차도 잘 기억되지 않을 만큼 책읽기에 정신이 산란한 상태였던것 같다. 이렇게 독서력이 떨어진것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게될 즈음 접하게 된 '다시 책으로'를 통해 다양한 요인들 중에서도 깊이 있게 책읽는 시간에 대한 안배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인 매리언 울프는 '다시,책으로'를 통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시대 사람들이 '깊이 읽기'의 능력일 잃어버릴 것을 경고한다. 또한 문자를 통해 인류가 해낼 수 있는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을 지켜나가기 위헤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도 제언한다. 메리언 울프가 책을 통해 묻는 몇가지 질문을 읽어보면 우리가 뇌가 책읽기의 기능이 얼마만큼 퇴화하고 있는지 절감할 수 있다.
-혹시 글을 읽을 때의 주의력이 예전보다 못한가요?
-심지어 무엇을 읽었는지를 기억하는 능력조차 떨어졌나요?
-뜻을 이해하지 못해 같은 단락을 반복해서 읽는 때가 있나요?
-글을 쓸 때면 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표현하는 능력이 미묘하게 줄었다는 의심이 드나요?
-더 이상 길고 어려운 글이나 책을 읽어나갈 뇌의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나요?
네, 저네요. 하나도 빠짐없이 딱 접니다. 그래요.
다행히 이런 상태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린것이 독서력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에 아이패드 프로를 수중에 넣으면서 마음에 꾹 담고싶은 좋은 책을 필사하며 음미하는 즐거움에 빠졌다. 주로 아이패드를 화면 분할을 활용해 왼쪽에는 책을 펼쳐놓고 오른쪽에는 애플 펜슬로 좋았던 내용을 옮겨적는 방식인데, 문장 혹은 문단을 읽고 그 내용을 곱씹으며 한자한자 적고 밑줄까지 그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힐링되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사실 이 습관은 책읽기가 너무 어려워진 상태를 극복하고자 시작했던 터였다. 기존 독서방식에서 속도는 두배정도 느리지만 적어놓은 노트를 보면 뿌듯함이 밀려오고 예전 학생시절 노트필기 보면 시험공부를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노트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리언 울프는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집중적인 읽기를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실재로 ebook 구독서비스를 쓰다보니 책을 열고 금방 다른 새책을 열어버리는 습관도 생기게 되어 뜨끔했다. 발작적인 독서는 지양해야 겠다는 깨달음도 얻었고, 나중에 아이들을 교육할때도 책을 통해 세계를 배우게 하는것을 꼭 잊지말아야 겠다.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 많이 인용되었는데, 그녀가 독서에 관해 남긴 공감되는 표현을 직접 적어보며 깊이있게 곱씹어 본다.
나는 읽기의 고유한 본질이 고독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저자의 지혜까 떠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느낀다. 이례적인, 더욱이 신적이기 까지한 법칙( 어쩌면 우리는 진리를 다른 누구로부터도 받을 수 없고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는 법칙)에 의해 그들의 지혜가 끝나는 지점이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지혜가 시작되는 지점처럼 보이는 것이다.
- 마르셸 프루스트<<독서의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