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소셜미디어에 적힌 프로필 소개글이다. 경험과 영감을 기록한다는 건 알겠는데, 디자인한다는 건 뭘까 싶을지도 모른다. 나는 매주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유할 콘텐츠를 위한 그래픽을 디자인한다. 오케이, 이해가 된다. 블로그 말고도 이젠 브런치에도 글을 쓰니 이전보다 더 많은 디자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잠깐, 이건 무슨 말이지?
처음엔 이미지 산출물을 내는 일만이 디자인인 줄 알았다. 블로그나 브런치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먼저 시작한 이유다. 결과물이 이미지니까 프로필 소개글을 위와 같이 쓴 거다. 하지만 갈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고 이미지로는 한계를 느껴 블로그를 기웃거리다 지금은 브런치로 다다랐다. 잘 쓰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어서 글 쓰는 일이 재미있었다. 늘 마음 한 켠에 '아, 그래도 디자이너로서 쓸 만한 결과물을 내야 할텐데...' 라는 고민거리를 안고서.
얼마 전 책 한 권을 읽었다. 아래 문장을 발견하고는 그 고민을 조금은 덜었고 덜어낸 만큼 내 소개글에는 확신이 생겼다.
디자인과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 글쓰기를 시작한 후로 "디자인은 이제 안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하지만 사실 글쓰기는 디자인 범위 안에 있는 일이다. 다만 주로 쓰이는 재료가 그림이 아니라 글자일 뿐이다.
그렇다. 나는 매순간 디자인을 했고 심지어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결과물의 형태만 다를 뿐이지 소재를 찾고 아이디어로 발전시켜 다듬어 가는 과정은 유사하다. 어떻게 해야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주목도를 높인다는 목적을 가졌다면 글을 쓸 때는 글 제목을 후킹하게 쓸 수 있고, 포스터 디자인을 할 때는 주제를 담은 그림을 중심에 크게 배치할 수 있는 일이다.
예전에 어떤 분이 내 블로그 글에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줄간격과 여백 등 전체 레이아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가독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을 보고선 정말 기뻤다! 내가 신경 쓰는 부분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느끼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디자인이란 게 항상 고객과 사용자를 생각하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체화된 걸까.
'문단이 조금 길어서 모바일에서 보면 가독성이 떨어지네. 여기서 내용을 나누자.'
'내용이 조금 딱딱할 수 있겠어. 관련된 사진이나 그래픽을 넣어서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시켜야겠다.'
인스타그램이든 블로그든 브런치든, 글을 발행할 때 단 한번도 허투루 올린 적은 없다. 내용은 나에게서 나왔더라도 형태는 늘 읽는 이를 향했다.
디자인을 잘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획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획력이 좋다는 말은,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능력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 내 일을 좁은 범위로 설정하면 그만큼 앞으로의 가능성도 좁아질 수 밖에 없고, 넓은 범위로 설정하면 그만큼 가능성도 넓어지게 된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디자인을 잘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과 내 디자인에 설득력을 가지고 싶었다. 그 훈련을 글 쓰기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느낌을 글자로 펼쳐내고 조리있게 정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꾸준히 쓰다 보니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회사에서는 기획안을 짤 때나 의견을 제시할 때, 디자인을 서면으로 설명할 때 자신감이 생겼다. (사소한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조직 환경이 크게 한 몫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창작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그림 말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서 업무에서 충족하지 못한 창작의 아쉬움을 해소하는 기능을 충분히 해낸다.
글이란 보이지 않는 내 안의 가치를 눈에 보이도록 가시화하는 훌륭한 도구다. 말은 발화하는 순간 사라지지만 글은 축적되어 오랜 시간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드러내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온라인에 축척한 글들이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도, 밥을 먹고 있을 때도,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을 때도 새로운 기회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디자인은 시각적인 산출물을 잘 내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꼭 이미지는 아니라는 거다. 디자인을 더 잘 하기 위해, 나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 경험과 영감을 기록하고 디자인해야지. 책 읽다가 너무 공감해버려서 써본 글, 끝!
참고 - 책 : 이진선,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