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스쿠버다이버의 일기 01
밤 10시, 회사 근처의 시끄러운 맥주집이었다.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과의 첫 술자리였고, 1차에서부터 먹은 맥주로 뱃속이 출렁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취미를 물었다. 나는 집순이고, 책 읽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판타지 소설과 영화에 환장한다는 건 굳이 말 안 했다. 언젠가는 부엉이가 날아와 호그와트로의 초대장을 주거나, 옷장을 통해 나니아 왕국으로 갈 날이 올 거라 은근히 기대해왔다는 것도. 생각보다 세상은 팍팍하고 건조했고, 이제는 가슴 뛰는 모험보다 로또 당첨을 더 기대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지인은 나보다 촉촉한 일상을 사는 것 같았다.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대학원도 가고 또 스쿠버다이빙을 배워서 강사 자격까지 있다고 했다. 오! 그거 나도 하고 싶던 건데. 어릴 적부터 해양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고, 대학교 1학년 때는 동아리 모집 행사에서 스쿠버다이빙 동아리를 기웃대다가 스무 살의 여름방학을 전지훈련으로 보내는 게 아까워서 포기했다고. 몇 년 전에는 필리핀에서 관광상품으로 체험다이빙을 했는데 참 좋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지인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장 시작해요!
왜 안 해?
왜 안 해. 그 세 글자가 별안간 내 머리를 때렸다. 취기가 싹 가셨다. 시끄럽던 술집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나는 숙제 안 하고 학습지를 숨겼다가 구몬 선생님에게 들킨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했다. 뻔하고 명백한 사실 앞에 어떠한 변명도 늘어놓지 못하는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상태. 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스스로를 속이고 회피하다가 딱 걸렸다.
그러게, 왜 안 했지?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비쌀 것 같아서? 수영을 못해서? 위험할까 무서워서? 어떻게 시작하는지 몰라서? 지인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니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무언가 새로 배우는 것을 예전처럼 혼자 충동적으로 결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일수록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때 얼른 시작해버리라고 설득했다. 비록 내가 귀여운 월급과 부실한 체력을 가진 사회초년생이지만, 새로운 모험 앞에 모든 것은 사소한 핑계로 느껴졌다. 지금 9와 3/4 승강장 앞에 서 있다면 망설일 시간은 없다. 설사 그것이 벽일지라도 일단은 달려들어야 기차에 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바로 다음 날, 지인이 알려준 강사님의 번호로 연락을 했다. 늘 그렇듯이 필요한 건 단지 조금의 용기였다.
지인이 말하길 스쿠버다이빙은 처음에 누구한테 배우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과정을 건너뛰지 않고 정석대로 배우는 게 좋고,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에 강사 스스로의 실력도 뛰어나야 한다고. 내가 소개받은 분은 강사도 가르칠 수 있는 트레이너 자격이 있었고, 소위 FM으로 수업을 한다고 들었다. 국내 바다나 동남아 등에 가서 며칠 만에 배우는 방법도 있지만, 코시국이기도 하고 나는 회사에서 쪼렙이라 길게 휴가를 낼 수 없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분이라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의 진짜 모험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