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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 Nov 07. 2021

하늘을 나는 기분-조류 다이빙

초보 스쿠버다이버의 일기 06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어른이 되면 점점 눈이 싫어진다던데, 나는 여전히 눈을 좋아한다. 일하다가 문득 창 밖을 보면 흰색으로 가득 찬 화면이 되어있을 때가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창 밖으로 펄펄 날리는 진눈깨비를 보다 보면, 나도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 훨훨 날고 싶었다.


해가 가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해내고 싶었다. 패기 있게  해양실습을 겨울바다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남쪽 바다라 수온은 17 정도였다. 긴장되고 신나는 마음에 추운 줄도 모르고 바다를 누볐다. 매일 다이빙이 끝날 때쯤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손발이 벌벌 떨었지만,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를 보니 그런 것쯤은 쉽게 용서가 되었다.


나는 매일 기상 일보를 봤는데, 강사님과 다른 다이버들은 모두 하늘의 날씨가 아니라 바닷속 날씨를 체크했다. 파도 높이와 조류의 방향을 체크하고 다이빙을 계획했다. 조류는 바닷속에 부는 바람이다. 물도 공기처럼 밀물과 썰물, 아래위 등으로 계속해서 섞이고 움직이는데 그걸 조류라고 한다. 통제되고 평화로운 수영장과는 아예 달랐다. 바다는 바쁘고 역동적이었다. 다이빙 중 의도치 않아도 몸이 갑자기 뜨거나 앞으로 빨리 이동하는 등 조류의 영향을 온몸으로 느꼈다. 같은 바닷속이라도 구역에 따라 방향도 다 달랐다. 조류를 거슬러 갈 때는 열심히 발을 차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바다에 조금 익숙해지자 강사님은 조류 다이빙을 하자고 했다. 조류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잘 이용해서 다이빙을 하는 걸 말한다. 조류가 센 곳으로 갈 거고, 조류를 타는 구간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부분에서는 발을 찰 필요 없이 조류에 몸을 맡기면 된다. 조류를 탄다니, 물속 바람을 타고 날다니! 마치 태어나서 처음 미끄럼틀을 타보는 아이가 된 것처럼 설렜다. 조류가 세면 더 위험하기도 하지만 '조류가 없으면 물고기도 없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그런 곳에 물고기가 더 많고 아름답다고 한다. 강사님은 어디서 어느 방향으로 물이 흐르는지를 잘 관찰해보라고 했다.


강사님이 짚어주는 걸 눈여겨보니 바닷속에도 바람이 참 많이 불었다. 앞, 뒤뿐만 아니라 바위를 돌고 나가기도 하고 절벽에서는 위아래로 불기도 했다. 해초의 방향을 보거나 내 몸이 밀리는 것으로도 조류를 알 수 있었지만, 가장 신기한 지표는 물고기였다. 물고기들은 조류가 심한 곳에서 반대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그 자리에서 열심히 버티고 있었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 조류로 인해 해양 플랑크톤 등이 실려오니, 그 자리에서 입만 벌려서 먹이를 받아먹는다는 것이다. 정말 게으르고 똑똑하지 않은가? 하강 조류가 심한 절벽에서는 물고기들이 하나같이 수직으로 위로 머리를 두고 있어서 마치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은빛 물고기들이 그 자리에서 서서 흔들흔들 춤추고 있었다. 살면서 그렇게 경이로운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절벽 위부터 아래까지 늘어져, 살랑살랑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커튼을 지나온 것 같았다.


다이빙이 마무리될 때 어떤 구간에서 강사님이 나에게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 보였다. 그만 발차기를 멈추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 손을 주먹 쥐고 앞으로 뻗고, 한 손은 가슴 옆으로 갖다 두도록 했다. 처음 배우는 자세여서 의아했지만 엉거주춤하게 따라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슈퍼맨 자세였다. 물이 우리를 앞으로 밀었다. 말 그대로 자연이 만든 놀이기구였다. 어릴 적 엄마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는 것처럼 부드럽게 하늘로 나아갔다. 물고기와 산호를 뒤로하고 물 밖의 걱정도 모두 다 뒤로하고. 우리는 바닷속 바람을 타고서 슈퍼맨처럼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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