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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 Jan 30. 2021

지구의 100%를 갈 수 있는 사람, 다이버

초보 스쿠버다이버의 일기 02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자격증을 땄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운전면허증처럼 학원이나 시험이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물론 강사 자격증 등 전문 자격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나와 같은 쪼렙이자 즐기는 레저 단계는 자격이 있는 강사가 교육 후 평가하여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단가와 상세한 교육내용은 강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는 각 단체(SDI나 PADI) 공식 홈페이지에 표준이 나와있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나는 소개해준 지인을 믿고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


강사님은 먼저 이론수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몇 년 만에 수업이라는 것을 듣는 건지. 다소 긴장하며 찾아간 사무실에 학생은 나 한 명이었다. 적어도 서너 명은 같은 듣는 줄 알았는데, 약간 당황했다. 나는 내성적이어서 학교 다닐 때도 교실에서 먼지처럼 앉아있다가 가는 것을 선호했고, 발표나 질문을 기피했다. 그러나 이미 내 발로 온 걸 어쩌겠나. 코로나 시국의 겨울 비수기에 혈혈단신으로 등록한 내 탓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강사님이 손해겠지 싶기도 했고.


먼저 준비된 종이에 나의 기본정보를 적었다. 어느 과정을 등록하고 싶은지, 동기는 무엇인지, 무엇에 관심 있는지 등 나는 아는 게 없었기에 물어가며 대충 체크했다. 그리고 내가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여러 질문에 답을 체크하고 유사시에 연락할 비상연락망으로 부모님 번호를 적었다. 보험 가입서와 비슷했다. 나는 건강한 편이었지만 그런 것을 문서로 적는다는 그 자체가 좀 무서웠다. 비상연락망을 적을 때는 아무래도 이 번호로 전화가 가는 상황을 상상하게 되니까. 모든 국내 보험에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상황은 예외라고 약관에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스쿠버다이빙만을 전용 보험은 따로 드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강사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수강생의 안전을 함께 책임지는 보험을 든다. 강사님은 내내 안전을 강조하셨는데,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그 점이 아주 안심이 되었다. 바다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목숨까지 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당연하게도) 가장 초급의 자격증 코스를 등록했다. 이름은 '오픈 워터'다. 영어로 보면 약간 낭만적이지만, 직역하면 개방수역이라고나 할까. 말 그대로 수영장 등의 갇힌 물이 아니라 바다나 호수와 같은 개방수역에 나가서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는 자격이다. 대신 아무 바다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심이 18ms내외로 제한된다. 비상시 급상승을 하더라도, 잠수병 등의 위험 등에서 안전한 깊이라서다. 그러나 동네 뒷산에 올라 보는 풍경보다 한라산 꼭대기의 백록담이 더 멋지듯, 대체로 더 예쁜 곳은 깊은 곳에 있다. 그래서 보통은 오픈워터까지만 하지는 않고, 그다음 단계인 '어드밴스드 오픈워터'까지 취득한다. 그러면 40m 깊이까지 다이빙이 가능하다. 물론 바닷속에서 몇 미터까지 내려가는지 누가 감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고가 나는 등의 책임 소지를 따져야 하는 경우 중요하게 적용되기에 지키는 룰이라고 한다.


강의는 PPT 자료와 함께 세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꽤 긴 시간 강의를 듣고 나 혼자 리액션을 해야 한다는 것(졸면 안 된다는 것)을 걱정했으나, 재미있는 설명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첫 장의 직접 찍었다는 바다 사진과 함께 쓰인 문구는 이랬다.


지구의 100%를 갈 수 있는 사람, 다이버


다이버 사이에 유명한 말이란다. 지구의 75%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전 세계를 여행한다고 해도 지구의 30%를 채 보지 못한 것이다. 오직 다이버만이 이 행성을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다. 바로 내가, 100%를 갈 수 있는 건가? 뭔가 엄청난 특권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의 티켓을 받은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지상에 경이로운 자연과 창조물들이 있듯이, 물속에도 산과 숲과 바람과 하늘과 별이 있다. 누구도 손대지 않은 산맥과 동굴과 산호 숲과 난파선과 처음 보는 다양한 생물들이 가득하다. 도시 한복판에서 지구의 전체를 누비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강사님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에서 봤던 한 신혼부부 이야기를 했다. 그 부부는 일주일 내내 해변에서 선탠을 했다. 다이빙을 할 때면, 일렁이는 해수면을 경계로 서로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해수면 위로는 쉬고 있는 해변의 사람들이 보였고, 수면 아래로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역동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물론 해변에서의 시간도 참 좋았겠지만, 그 선 밑으로만 가보면 엄청난 풍경과 재미가 있는데. 볼 게 얼마나 많고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나머지 반절의 세상을 못 보고 그대로 신혼여행이 끝나버린다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세상과 시야가 넓어진다는 건 삶의 층위가 여러 겹으로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내가 아는 것보다 세상은 더 재미있는 곳일지도 몰랐다. 이제껏 몰랐던 반을 알게 되면, 나의 인생이라는 여행이 더 풍성해지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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