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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 Nov 03. 2021

다이버의 언어1

초보 스쿠버다이버의 일기 04

물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호흡기 소리만이 들린다. 흡, 후-, 흡, 후-. 짧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규칙적인 소리. 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무언가 굴러가고 걸어가고 소리친다. 모두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우리는 시끄러운 지하철 안에서도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본다. 나는 집에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보고 듣는다.


스쿠버다이빙의 매력은 시끄러운 세상에서 달아나 고요한 물속으로의 피난을 간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다이버들 중에서는 가족, 일, 자신을 옭아매는 그것들에게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순간이 좋아서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람이 많다.


ⓒ SDI(https://www.tdisdi.co.kr)



물속에서 다이버들은 어떻게 대화를 하고 의사표현을 할까? 물속에서는 말을 할 수 없기에 대부분 간단한 내용은 수신호를 사용한다. 가장 중요한 소통은 안전을 체크하는 내용이다. '괜찮다'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오케이 표시를 하면 되고, '이상이 있다'는 손등을 위로한 채 손목을 양쪽으로 번갈아 회전하면 된다. 다이빙을 하면 수시로 이 오케이 사인을 하게 된다. 동지의 안부는 곧 내 안부와 같기 때문에, 다이빙 도중 수시로 우리 팀과 버디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오케이 사인은 하와이의 "알로하"와 같다. 기본적으로는 인사말이지만 온갖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쓰인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안녕하세요"지만 "멋지다", "대박이다", "괜찮다" 등 의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다.


사람이나 사물을 손으로 가리켜 표현한다. 수신호의 개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 필수적인 약속만 정하고 그 이상의 내용은 신호를 혼합해서 사용한다. 예를 들면, 자신을 가리킨 후 귀를 가리키고 손을 좌우로 흔들면, '나의 귀에 이상이 있다'는 뜻이다. 또 다이빙 진행에 관한 것도 있다. 팀이 함께 이동을 하기 위함이다. 저 쪽으로 가자, 상승/하강하자, 멈춰라 등을 손의 방향과 움직임을 사용해 표현한다. 수신호는 꼭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좀 더 길고 복잡한 내용이면 물에서 쓰는 스케치북에 내용을 적을 수도 있다.


수신호를 잊어버리거나 헷갈리는 경우, 자연스럽게 그냥 바디랭귀지를 쓰게 된다. 영어를 못하는데 미국인을 만난 상황처럼. 만국 공통어라 웬만하면 이해가 되지만, 가끔 ‘몸으로 말해요’ 게임이 되기도 한다. 내가 문제를 내고 맞추는 건 강사님 쪽이고, 정답이 맞는지는 도통 알 수 없다. 나 같은 초보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마음속은 좌충우돌 우당탕탕 당황 일색인데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왜 저는 계속 가라앉나요?", "앗, 계속 뜬다! 무서워요!", "우와, 정말 예쁘다!", "저 물고기는 이름이 뭘까?", "몸을 돌릴 수 없어요." 등 평소에는 말도 없으면서 물속에서는 유재석이 된 듯하고픈 말이 넘친다. 당황과 궁금함과 감탄의 연속인데, 그걸 제 때 표현하지 못해 답답하기도 하다. 아직 수신호에 덜 익숙하고 대부분 지시를 듣고 따라가는 쪽이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대부분 'Yes or No'다. 아니면 도와달라는 애틋한 눈빛을 최선을 다해 발사할 수밖에. 다행히 강사님은 나 같은 쪼렙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은 금방 알아채고 해결해주신다.


바다에서 방어 떼를 만난 적이 있다. 자꾸 가라앉아 바닥에서 허우적대던 내 팔을 강사님이 갑자기 잡고 세게 흔들었다. 평소에는 팔을 살짝 잡는 정도여서 깜짝 놀랐다. 강사님은 물고기 떼를 발견해 너무 기뻤고, 떠나기 전에 알려주고 싶어 흥분했던 것이다. 그때 수신호도 비언어적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화나거나 흥분하면 어조가 높아지고 말소리가 커지듯, 수신호도 감정이 드러난다. '와! 빨리 봐! 대박이야!' 이런 호들갑이 들리는 것 같아 웃겼다. 가까이서 본 물고기는 어찌나 크고 무섭게 생겼던지 나는 당연히 상어인 줄 알았다. 방어와 눈이 마주친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컸다. 나중에 내가 노량진에서 먹던 그 방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얼마나 미안하던지.


물고기들도 나름의 언어로 서로 대화를 한다고 한다. 인간의 언어보다는 단순하겠지만 그들은 평생 그것으로 충분하다. 버디의 눈을 마주치고 안부를 물을 때, 오케이와 눈빛으로도 교감할 수 있음을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 초코파이 CM 송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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