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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paca Prime Oct 07. 2020

붉은 바다의 끝에서

황무지의 꽃 보다 더 억센 삶을 사는 사람들

2010년 4월의 어느 날 처음으로, 지원하는 부대의 수색대 지원 요청을 받았다. 파병하면 역시 남자의 로망, 액션, 전우애라고 생각했지만, 그와는 사뭇 먼 먼지바람과 싸우무료한 나날의 연속에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었다.


‘드디어 진짜 아프가니스탄을 밟아 보는구나.’ 


전초기지의 아늑한 품을 떠나 실제 현지인들을 보고 아프가니스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기대와, 처녀 수색 작전에 대한 약간의 긴장으로 난 소총의 안전장치를 만지작거렸다.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날씨는 숨을 턱턱 막았고, 오랜만에 걸친 장비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 생각하며 대열을 맞추어 걸어 나갔다.




밥 한 끼 먹을 시간 정도가 지나 일렁이는 열기 속에 작은 마을 입구가 보였다. 이십여 가구 정도가 모여사는 군락 앞에는 ‘바자’라고 불리는 그들의 장터가 있었다.


‘부대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도 마을이 있었네?’ 


그제야 알고 보니 수색 작전이란 게 그냥 동네 마실이라는 사실에 허무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잔뜩 긴장했던 나 자신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같이 동행한 현지 출신 통역이 상인들과 대화하며 닭(살아있는 닭이다), 감자, 토마토, 찻잎, 설탕, 빵 등을 구입해 자신들의 배낭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결국 장 보러 온 거네.’ 


동행한 팀원 앤디(Andy)도 닭 두 마리를 사서 발을 끈에 묶어 한 마리는 자기 허리춤에 하나는 내게 건네주었다.  


“닭 뭐하게?”
“돌아가면 샤가 맛있는 거 해줄 거야.”


우리와 동고동락했던 통역 샤(Shah) 선생은 실제로 직속 요리사처럼 매일 맛 좋은 음식을 만들었기에 나도 선뜻 닭 한 마리를 받아 방탄조끼 캐러비너에 거꾸로 매달았다. 담배를 기다릴 팀원들이 생각나서 통역에게 부탁했더니 구멍가게 주인장이 몇 보루를 가져 나왔는데, 놀랍게도 Pine(옛날엔 ‘솔’ 담배였는데)과 88 같은 한국 브랜드였다.  대여섯 보루 챙겨서 가방에 넣으며 우리 주위를 신기한 듯 뱅뱅 도는 꼬마들과 인사를 했다. 참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국가와 어른들의 정치적 갈등에 찌든 아이들 것 치고는 너무나 예쁜 눈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마을 시장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쯤, 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지평선까지 닿은 그로테스크하도록 붉은 꽃의 바다. 나의 입에서 최고의 찬사가 튀어나왔다


“호올리 쒯. 앤디야. 저것 봐. 꽃밭 진짜 크다.”


그러자 통역이 말했다. “저건 오피엄 밭이야.”


‘오피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건데… 뭐였더라?’ 찰나 앤디가 물었다.


“헤로인 만드는 거?”


그랬다. 개인사회 또한 국가를 나락으로 끌고 가는 악명 높은 꽃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세계 양귀비 생산 부동의 1위, 그 아프가니스탄에서 몇 개월을 지내면서도 보지 못했던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별과 같은 눈을 가진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이,  저 꽃봉오리를 잘라 묶어 팔아 마약 생산에 한몫을 하게 되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미군이 가는 곳마다 양귀비 밭을 태워 ‘악의 축’의 근본을 뿌리째 뽑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미개한 나라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의 칼부림은 정글에서 길을 잃고 발작처럼 칼을 휘두르는 것임을 내 눈이 증거 했다.

 
‘이 땅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양의 양귀비가 자라고 있겠구나.’ 


미국의 오만방자한 계몽은 이 땅에서는 철저히 실패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주먹구구 우격다짐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의 사람들은 이런 척박한 환경과 상황에서 수십 세기를 버텨왔고, 탈레반과 부패한 정부의 지긋지긋한 정권다툼 속에서도 저 양귀비 꽃처럼 억척스럽게 살아남았다. 미국의 절대 진리인 민주화 서구화 같은 개념은 이들에게는 용납할 필요도 가치도 없는 것이었고, 수세기를 걸쳐 이민족을 탄압하며 지나간 모든 것들이 그랬듯, 우리의 오지랖은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문명의 이기와 혜택에 찌들 대로 찌들어서 스마트폰과 에어컨이 없으면 한 시도 버티지 못하는 게을러 퍼질러진 돼지 같은 우리를, 이 사람들은 오히려 같잖게, 심지어는 가엾게 여기지는 않았을까?




돌아오는 길에 통역이 '앞에 산을 넘어가면  끝내주게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라고 신나게 자랑을 했다. 그 땅은 자원도 풍부하고 경관도 좋아서 모든 이가 탐낸다고 말했다. 아마 욕심쟁이 미국을 빗대어 말한 것이리라. 그러나 저 산 너머에는 또 황무지뿐인걸 난 누구보다 잘 알았다.


“넌 이 곳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아프가니스탄은 가장 아름다운 땅이야.” 


그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는 정녕 진심이었다. 모래먼지의 해일이 멀리서 불어닥치는 걸 보았을 때 우리의 발걸음은 빨라졌고, 찌끼가 세차게 얼굴을 때릴 때쯤 우리는 겨우 우리 텐트에 도착했다. 이곳 사람들의 억척스러움 만큼, 그날의 모래 폭풍은 세차게 불어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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