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깨는 것 보다 과일이 터지는 것이 더 재밌는걸
얼마전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양자역학과 애니팡(가든스케이프) 그리고 인생을 한데 엮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데, 내 브런치인 멀티앑가즘에도 통용이 가능할 것 같아 들고 왔다.
요즘 인스타스토리에 뜨던 광고인 가든스케이프에 당했다. 원래 게임 안좋아하는데 히어로워즈에도 낚이고 가든스케이프에도 낚여서 초딩때도 중딩때도 하물며 고딩때도 안했던 게임을 하느라 뿅뿅병에 걸렸다.
어찌나 열심히 해댔는지 눈이 퀭해지도록 밤늦게까지 해서, 하루는 회사에서 남산타워로 팀빌딩 나들이 다녀온 날... 고작 그거 걷고 뻗어버렸다 (피로누적)
엄마는 날 보며 게임을 해대서 힘들어진 사람 같다고 했다 ^^(수험생 때조차 안하던 짓을..)
가든스케이프는 애니팡과 비슷한 게임이다. 내가 애니팡을 접했을 때도 이수준은 아니었는데 가든스케이프.. 왘앀ㅜ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애니팡의 경우 동물을 옆 한칸 이동시켜서 3개 이상 같은 동물을 나열시키면 팡!하고 터진다. 가든스케이프는 동물이 과일로 바뀐 설정이다.
그런데 그냥 없애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미션이 있다. 위의 애니팡은 보아하니 '눈덮힌 블록을 49개 치우기'가 미션이고,아래의 가든스케이프는 '보석 땅 25개 없애기, 풀숲에 파묻혀있는 요정인형 6개 꺼내기' (좌측부분을 보면 보인다)가 미션.
무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니팡은 상단부에 Moves 23이라고 적혀있다. 23번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가든스케이프도 화살표에 16이 써있다. 16번의 움직임 안에 미션을 성공해야한다.
이 게임을 개발한 사람들은 내가 과일을 움직이고 나면 그 다음에 나올 과일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깻잎 세개를 없애면, 개발자들은 그 다음에 뭐가 세개 나올지 알까? 아니, 그보다 내가 깻잎 세개를 없애면 세개만 나올까? 그 다음 체인리액션으로 다른 포도나 배 사과가 없어질 수 있는데 그럼 새로운 과일이 세개보다 더 나와야하잖아?
내가 이번 게임의 이번 차례에서 포도를 없앨지 사과를 없앨지 결정하는 행위는 나의 자유의지다.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떤 과일이, 몇개가 쏟아져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판이 복잡해질 수록 사각형의 지형에 어디는 과일이 닿을 수 있고 어디는 닿지 못하는 굴곡이 생기면서, 과일이 쏟아지는 규칙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확률상 '여기에 가겠지'라든가 '이게 나올 것 같아'라는 생각까진 할 수 있지만, 사실 정확하지도 않은 그 [계산]이, 내게 내려진 미션을 수행하는데에 의미가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내 자유의지는 중요하다. 미션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게임을 하는 것 보다 미션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편이 성공할 확률이 커지니까.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내 자유의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별 의미 없이 과일 위치를 바꿨는데, 갑자기 내가 인식하지 못한 과일들이 펑펑 터지더니 갑자기 새로운 과일이 나와서 또 잔뜩 터지고 미션이 클리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판을 깨고 다음판으로 넘어가는 것은 운명일까 아니면 나의 노력 덕분일까?
동물이 터지는 것은 그냥 그랬는데 과일이 터지는 것은 재밌나보다. 내가 눈이 퀭해질 때까지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건 미션을 클리어하는 재미보다 과일이 터지는 것을 보는 재미가 더 컸기 때문이다.
우연히 사촌동생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제 눈이 핑핑 돌도록 하는지 서로 얘기를 하게 됐다가 또 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가든스케이프는 5번의 실패를 하면 과금을 해야지만 게임을 할 수 있다. 과금을 하지 않으면 대충 한 25분 쯤 기다려야 한 판을 더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이 무한대로 주어지면 눈 빠지도록 게임을 한다. 근데 이 목숨은 시간 단위로 주어진다. '1시간 무제한 플레이 가능!' 이런 식이다.
그런데 내 사촌동생은 1시간 무제한 플레이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한다는 거였다. 그 친구는 '아이템'이 무제한으로 주어지면 집중해서 한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목숨이 무제한으로 주어져도 아이템이 없으면 1시간 내내 깨지 못하는 판도 있다. 아이템이 있으면 목숨이 별로 없어도, 템빨로 팡팡 터뜨리면서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나는 판을 깨는 것도 재밌지만 과일터지는 걸 보는게 재밌는거라는걸. 한시간 무제한 플레이를 해도 다 끝나고 나서 아쉬운 건 내가 과일터지는게 보고 싶기 때문이란 걸.
내가 사는 세계도 '가든 스케이프'같다. 요즘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라는 것에서 비슷함을 느낀다. 의지대로 과일의 위치를 바꾸지만 이 작은 움직임이 나중에 어떤 팡팡들로 연결 될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한번의 위치변경으로도 다음에 무슨 과일이 나올지조차 알 수가 없다.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어이없게 넘어가는 판이 있고, 누가 봐도 어렵지 않은데 꽤나 시간이 걸리는 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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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게임이라 규칙이 있고 꽤나 그 규칙이 단순하다. 이번 판을 깨지 못하면 다음판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식이다. 그런데 내 삶은?
이번 판을 못깼다면 다른 미션으로 다른 판을 진행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꼭 그 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은 가든스케이프보다도 조금.. 더 복잡하니까.
많은 판을 깨서 몇백판 몇천판쯤하게 되면 사실 판 숫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더 많은 게임을 이기고 싶을 때 나는 게임에 흥미를 잃게 됐던 것 같다. 하지만 과일이 터지는 것에 재미를 붙이니 눈이 핑핑돌도록 게임을 하고 있네ㅠㅠ 의도적으라도 그만해야겠지만, 여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내 삶의 미션은 내가 정한다는 것. 의미부여는 내가 한다는 것. 다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과일들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불확정적이며 내가 하는 행동이 추후에 시간이 지나 어떤 의미를 띌지 알 수 없단 것. 지금은 실수같아보이는 것 덕분에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없애고 싶었던 과일을 없애더라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기도 하고. 그리고 이 모든 판에는 끝이 없다는 것과, 이기고 싶은 마음보다 터지는 과일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마음이어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눈이 핑핑 돌아가도록 할 수 있단 것.
인생은 애니팡이야.
과일터트리러 가야겠다. 오늘은 진짜 다섯판만 해야지 (매번실패하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