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 같은 출산 장려 아이디어에는 코웃음이 나네
대한민국 90%가 알고 있는 동요. 섬집아기.
집에 오도카니 혼자 남은 아이가 굴 따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 스르르 잠이 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건 1절의 내용이고
뒤에 2절이 이어진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남겨진 아이의 입장을 1절에서 노래했다면 2절은 엄마의 입장을 노래한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초등학교 때 분명 교과서에서 배웠을 텐데
지금 엄마가 되어 섬집아기 2절을 다시 들으니 마음이 울컥했다.
노랫말에 아기라는 단어를 쓴 걸로 보아 아무리 많아봐야 5살, 6살쯤일 것이다.
바닷가 옛날집에 지금처럼 도어록이 있었을까 담벼락이 높았을까.
추측 건데 근처에 아기를 맡길만한 집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굴 따는 해녀의 일터에 아기를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테다.
텅 빈 집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홀로 남겨놓고 일을 나가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하고 또 미안했을까.
불안한 섬집아기 엄마는 바닷가 그 흔한 갈매기 소리에도 심장이 조여들었다.
생계를 위해 넘치게 채워도 부족한 굴바구니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집으로 아기에게로 달음질쳐 갈 정도였으니.
그 마음이 너무도 공감되고 이해돼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섬집아기 엄마의 마음은 오늘 대한민국 땅 위의 미혼, 기혼 남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떨어지는 출산율 속에는 깊고 깊은 불안감이 잔뜩 자리 잡고 있다.
내 앞길도 막막한데 아이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육아비용은? 일은? 내가 일을 하면 아기는? 아기를 돌보려면 내 일은?
사람을 고용한다 치면 그 돈은? 아기 양육비는?
나의 경우는 오전과 오후 각각 3시간씩의 공백을 메울 수 없었다.
베이비시터나 도우미를 고용한다고 해도 그들 역시 9시 출근, 6시 퇴근.
그렇다고 내가 출근을 늦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퇴근을 빨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순간이동 초능력이 없어서 진심으로 개탄스러울 정도였다.
아기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비용 그리고 현실적인 시간
이 두 가지를 모두 메꿀 수 있어야 한다.
올해 내가 본 광고 중에 가장 멍청이 같았던 광고는 출산을 장려하는 공익광고였다.
어떤 대행사가 그 따위 아이디어를 내고
어떤 담당 공무원이 그걸 컨펌하고 온에어 했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참... 돈지랄 제대로 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아기가 예쁘다, 힘듦보다 행복이 더 크다 따위의 구닥다리 카피들은 당장 집어치워야 할 때다.
현실감 떨어지고 사람들의 비웃음이나 사는 메시지일 뿐이니까.
현대판 섬집아기 엄마들은
울면서 굴을 캐거나 울분에 굴바구니를 던지거나
선배들의 그 모습을 보며 아기를 포기하거나
오늘도 그렇게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