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이 끝나는 순간 저는 요동치듯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혼났습니다. 여름 성경학교에 예수님 오신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요??
본디 첫사랑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저를 이렇게 만든 건지 아니면 본래의 악마성이 드러난 것인지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 말했더니 그는 사랑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도 그 친구 얼굴 생각하면 행복하고 뭐 먹으면 데려오고 싶고 항상 함께하고 싶고 얼굴만 봐도 행복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게 사랑이구나 싶었죠"
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가 봅니다.
그리고 이별의 아픔도 나이를 가리지 않고요.
"이별이 너무 힘들어요. 너무 사랑했어서 못 잊을 것 같아요. 쉽게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아요"라는 그의 말에 저는 첫 이별을 맞이하고 며칠을 울었던 어린 나를 떠올렸습니다. 이후로 몇 번의 이별이 있었고 비슷하게 힘들었지만 처음만큼 아프지 않았었던 게 생각났습니다. 어리고 마음이 여릴수록 더 가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맡기고 싶은 지 묻는 제게 사진이고 반지고 다 버리고 태워버렸다고 말하는 그. 그냥 제 첫사랑이고 그녀를 통해 많이 배웠기에 연애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보다 1살 많았기도 했지만 제가 원래 자신감도 없고 마음 표현을 잘 못했는데 전 애인 덕분에 많은 걸 배우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더 좋아했어요. 헤어지고 나서 그냥 세상에 빛이 꺼진 기분이었어요. 며칠 밥도 못 먹고 울고...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마음이 아프네요. 그런데 잊어버려야겠죠? 그 사람은 남자 친구가 생겼거든요."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가 아는 세상이 내가 아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반지를 다시 맞추려고 했는데 맞추지도 못하고 헤어졌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자가 헤어질 때 보냈다던 장문의 문자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길게 쓴 그녀의 심정을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에
'그동안 너같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나에게 뜻깊은 시간이었어. 잘 지내고 꼭 행복해야 해 미안하고 고마웠어'
라는 글을 보고 뭔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제 마음속에 애들 연애로 가볍게 봤던 시선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헤어진 이유야 무엇이든 이런 인사를 나눴으니 정말 제대로 사랑하고 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사랑으로 간직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제가 하는 일이니 오늘 들려주신 이야기, 보여주신 문자는 제가 가지고 있고 저만 간직할게요. 잘 잊어요. 앞으로 또 좋은 사람 만나고 또 연애할 거잖아요"
"감사합니다. 아직도 그 친구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해요.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고 싶다 생각해요. 그래도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야죠. 그리고 만약 다음 연애를 한다면.. 다음 연애는 제가 진짜 잘할 자신 있어요!!!"
잘 간직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 착한 친구.
그가 앞으로 잘 잊어갈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운 걸 감사하는 태도가 다음 연애의 큰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