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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Dec 04. 2020

허수아비

학교는 졸업을 했고 입사날짜는 받아둔 2002년의 겨울, 타지 생활 돌입 직전까지 약 2, 3개월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자금의 여유가 없었던건지 비워져 있는 시간을 못견뎠던 건지 그 짧은 기간을 메꾸기 위해 부모님 친구가 운영하는 큰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어른들이 차마시고, 밥먹으로 자주가는 산 초입에 있던 레스토랑이었는데, 주로 중장년의 연인들이 많이 왔던 것 같다. 그분들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는 전혀 모르겠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까만색 정장을 입고, 고급 레스토랑처럼(어디까지나 처럼 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일하고 있는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있었다. 부장님 1분, 매니저 1명 이렇게 두명은 직원이었고 남자였다.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포함해 3, 4명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나는 가장 최근 합류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던 나는 테이블에 셋팅해야 할 나이프와 포크의 자리와 또 호텔리어라면 누구나 가능한 접시 세개 동시에 들기가 가능했기에 일을 한 첫날부터 일을 지시하든 안하든 손님오면 인사하고, 물 가져다 드리고, 주문받고, 음식 딜리버리도 하고 그냥 일을 했다. 그리고 딱히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보다 나이가 있어서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한명 왔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입구와 카운터 사이의 어느 지점에 계속 서 있기만 했다. 손님이오면 인사만 할 뿐, 직원이나 선배의 지시가 있어야 움직일 뿐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하루이틀 지켜보다 물어보았다. "~~씨 손님오셨는데 고블렛에 물 받아서 테이블로 가져다 줄래요?" 그런데 그 아르바이트생 난처한 표정으로 할말을 못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왜요? 왜 안움직여요?"라고 물었다. "아..... 저기... 매니져님이 여기에 가만히 서 있으라고 했어요." "왜?" "여기서 그냥 보기만 하라고 하던데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서비스직.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 그랬다. 선배들은 즐겁게 신나게 일하는데 나같은 신입들은 가만히 서있다. 그자리에 본드 붙여놓은 마냥, 그리고 시간맞춰서 플로어(손님 구역)에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나가서 정리를 했었다. 얼마간의 기간이었는지는 기억에서 희미하나 분명 최소 일주일은 그리 지냈던 것 같다. 마치 벌서는 것 처럼 말이다.


여기 레스토랑도 그걸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입이들에게 일은 주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라고 허수아비마냥 한자리에 그냥 우두커니 세워둔다. 그 시기에는 기본적인 것도 가르쳐주지 않기에 손님이 몰아치는 말이되면 선배들은 뛰어다니느라 바쁜데, 신입은 눈치 보느라 바쁘다. 그냥 서 있는 것 자체가 가시방석이다. 그건 신입을 위한 배려도 아니고, 교육의 목적이 아니다. 그냥 군기 잡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서 있는 시간을 견디면 1차시험 통과다. 그러면 고블렛에 물 따르는 것부터 차례차례 알려준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매니저가 나에게도 여기에 서 있으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없다. 그리고 나는 손님이 들어오면 반사적으로 내 몸을 움직였다. 기존에 있던 멤버들이 황당해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가 취업으로 빠지며 내 자리에 내 친한 동생을 소개해준 덕분에 전해들었다.


그 때의 나는 겁나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부모님 친구가 소유한 레스토랑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기업에 취업이 확정되어 잠시 있을 곳이니 눈치를 덜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게 그냥 눈치가 없었던 걸까?


20년이 넘는 일하는 기간을 지나오며 한가지 확신이 드는 것은 모난 돌이 더 많은 일을 배우고, 더 앞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18년을 한 직장에 있으며 많은 후배 신입직원들을 만나보았다. 처음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교육팀에서 해주는 친절한 교육이 끝나고 각 부서에 배치가 되면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친절한 교육팀 직원들은 이제 손을 뗀다. 배정된 부서의 직속선배들에게 업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참으로 어렵다. 그 어렵다는 입사의 관문을 통과했는데, 무언가 다시 테스트받는 기분이다. 일도 제대로 안주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선배는 너무 바빠보이고, 자리에 앉은 신입사원은 인터넷창이 아닌, 회사 업무망만 바라보는 고통의 허수아비 시간을 견뎌야 한다. 선배를 마냥 욕할 수도 없다. 그 선배도 그리 배웠기에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처리할 일이 많은 것을 어쩌나.


그럴 때 그 상황에 순응해 가만히 있는 것 보다 선배가 바빠보여도 물어보길 권한다. "제가 할 일이 없을까요?" "회의 테이블 정리할까요?" "회의 준비 할까요?" 질문을 해야한다. 선배가 쌀쌀맞게 대해도 계속 들이대라. 그러면 어느순간 당신에게는 일이 와 있을 것이다. 적극적이다는 평을 받게 될 것이고 일하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선배들도 그러면 안된다. 나도 그랬다. 후배들에게 쌀쌀하게 대하고 뭐든 혼자 못하게 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하던 선배였다. 참 못난 시절이었다. 냉정하게 후배가 실수할까봐는 10%도 되지 않았고, 내 일을 뺏길까봐 내 영역이 침범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90%는 되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왔다. 내 위에 선배도 없고, 내 아래 후배도 신입밖에 없던 시기. 조직에서 우리팀을 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그 때. 으쌰으쌰 해야할 직원이 신입 한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많은 일을 위임하고, 간단하게만 진행과정을 체크했다. 그래야 내 일이 팀의 일이 돌아갔기에. 그 신입직원은 일을 아주 잘했고, 선을 넘지도 않았다. 둘이서 내는 시너지가 대단했다. 일이 많았고, 어려웠고 힘든시기였지만 함께 일하고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리 둘에 대한 회사의 평판도 좋은 이야기가 도는 것 같았다.


허수아비처럼 세워놓는 시절은 다 지나갔으리라 믿는다. 간혹 직속선배의 성향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빨리 깨닫길 바란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본인의 오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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