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생활 & Community Correction #1
삶의 희망이 보이는가? Yes.
삶이 재미있는가? No.
삶이 그럭저럭 살아지는가? No. Yes. No. Yes...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은가? 이땅에서? No.
삶의 목적은 이루고 있는가? No.
그간의 이민자의 삶은 이 곳 포트웨인이라는 동네에서 약 5년 넘게 지내 왔고, 6년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그간의 삶을 다시금 돌아본다. 현실이라는 인생은 나에게 뒤를 돌아볼 기회를 주지 않기에 글을 통해 나는 내 삶의 뒤태를 감상하고, 현실에서는 하지말라는 '후회','원망', 또는 심지어 '증오'까지도 한다. 아니, 그냥 그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의 다섯까지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복잡 미묘한 감정의 무게가 깊이 자리잡고 있다. 첫번째 질문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나는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연속되는 글에서는 첫번째 질문의 대답을 가장 나중에 진술하고 싶다. 가장 찬란한 빛, 주인공이자 세상을 밝혀줄 영웅은 나중에 나타나 모든이의 행복을 책임지고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것이다. 뭐 웃기긴 하지만, 그런식의 전개를 진행하고 싶은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솔직해 너무 지루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와 아침을 간단히 준비하고, 아이들 학교갈 것을 챙기고, 우리도 출근을 한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다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혹자는-아마도 내 마음속의 현실이라는 자의 질문일 것이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그렇다, 이민자의 생활에서 최소 10년은 고생해야 한다, 더 어렵게 사는 이민자들도 많다, 불만을 가지면서 구지 미국에서의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이며, 이민이라는 선택의 주체는 누군가? 바로 너. 삶의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여겼다. 그간 여행을 다니면서 재미있었던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enjoyable의 의미보다는 생활의 활력소로써의 재미를 말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중부에서의 지리한 삶을, 배타적으로 많은 white race에 대해 느끼는 소외감, 솔직히 자주 접하는 micro-aggressions 등의 모든 스트레스를 조금이나 풀어낼 수 있은 outlet. 잠시 쉼을 갖는다는 개념적인 부분을 고려할 때, 나의 삶에는 아직까지 그것이 박탈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이들과 비교할 때, 나는 현상과 사물을 보는 각도가 약간 부정적이거나 너무 깊거나 또는 너무 많은 의미를 캐내려고 해서 그것이 실패했을 때, 더 많은 불만을 토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밝은 부분을 삶에서 들추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삶은 재미가 없다. 살아가야할 가치적인 측면에서 솔직히 미국 타지역 내지는 한국 땅이 조금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판단했을 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타인에 의해 자존감 내지는 인격적인 level이 올라감- 삶에서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 자체적인 에너지만으로도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높히는 사람들도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환경 계속적으로 정체되고 그들에게 negative feedback을 주거나 어떤 반응조차해주지 않는다면, 쉽게 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곳에 삶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이유는 나에게는 단순하다. 할 것이 별로 없고, 할 장소가 마땅치 않으며,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거나 없으며, 할 이유까지도 가끔씩은 없어진다.
삶이 그럭저럭 살아진다. 하루는 쏜살같이 흘러가고 어느덧 주말이 다가옴을 느낀다. 주말이 다가와서 와이프가 일을 하는 날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나도 잠시나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참 곤란하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우리가 즐겨보는 Channel 중 하나이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싫은 대하기 싫은 매개체이기도 하다. TV를 본다는 것은 정말 할일이 없다는 것이고, 아이들의 정서적, 사회적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기본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그려지는 상상의 삶과 현실의 미국의 삶을 가끔은 비교해본다. 참 덧없고 쓸데없는 생각이긴 하나 아직은 미국에 정착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로써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인가보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가족들과 이 시간을 조금 더 보낼텐데, 누군가를 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동창모임이라도 잠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놀이공원에 놀러가거나 주말 이벤트를 만들어보지 않았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자면, 이곳의 생활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이민 생활 초반에는 정말 미치도록 한국생활이 그리워서 미국자체가 큰 연방 prison으로 느껴졌다. 다행이 아이들의 미래의 삶을 보는 것으로 그 모든 상상적 상념들을 상쇄시키려고 애쓴다. 아이들은 조금더 경쟁이 적은 곳에서 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에서 조금 더 나은 곳이 이곳이라고. 그들의 삶은 조금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여기서는.. 그런 생각으로.. 다만, 가끔씩은 큰 아이의 말을 듣고 힘이 빠지기도 한다. "아빠, 전 크면 대학교 한국에서 다니고 싶어요." 한국은 좋은 나라고 살기 좋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고국" 치열한 경쟁 면에서 전투를 해야하는 전쟁터에서 무기도 없는 샌님이 살아나갈 수 있을까? 사실 여기의 삶에도 그가 싸워야할 것들이 있다. 소수 인종으로써 느끼는 인종차별, 부모세대의 culture와 local culture가 매우 다름으로 인한 정체성 갈등. 그것으로 인해 어디에도 섞여들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 등은 그들에 계속 겪어나갈 문제이며, 숙제라고 생각된다. 다만, 그것들을 우리 아이들이 잘 소화하여, 어떤 방식의 mask를 만들어 잘 적응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의 이곳 생활의 적응은 그저 mask를 잘 쓰고 여러 인격체들과 다양한 감정변화를 잘 읽고 그들에게 잘 대처해 나가는 일들을 무리없이 잘 해나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행인 점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인도에서 왔고, 안정된 삶을 되찾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나가려는 찰라, 많은 것이 힘들어졌으며 현재는 많이 지쳐있어, 만남을 제안하기도 조심스러운 친구. 또는 우릴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는 목사님, 교회식구들, 그간 많은 학업적인 부분을 돌봐줬던 교수님들, 학교 관계자들, 현재의 직장에서의 동료들 보스.. 아이들의 선생님들 중 소수긴 하지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다들 참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 미국이라는 땅 자체에 감사하여, 나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구나라기 보다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관심과 사랑들이 모여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버티면서 살아간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지역적인, 현실적인 정착면에서는 많은 부분이 차분해졌다고 보여지나,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이방인의 색깔을 계속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낯선 지역으로 잠시 여행을 가거나 하면, 가끔은 내가 미국에 처음 온 이민자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하는 모습을 느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