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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풍회 Jan 16. 2020

미국간호사이민자남편

나 - 남편

난 나 자신을 여기서 나름 성실하게 살았지만 결정적인 선택을 실수, 단 행운이 따른 축의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난 평범하지만 조금 색다른 고생과 경험을 하였다. 젊을때.. 내 인생스토리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 정보부터 풀려한다. 난 지방대학 출신에 그냥 영어는 남보다 좀 더 하는 수준이며, 심리학과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했고 범죄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미국에 대학원을 가려다 대학도 진학 못한 축이다. 그것이 벌써 10년전이야기다. 어쨋건 미국에서 한국에 오니 가정은 생겼지 돈은 없지하여 부모님 신세로 간신히 집 만들고 궁여지책으로 서울에 살면서 직장을 여러번 옮겼다. 그러다 내 고향과도 같은 광양으로 와서 이래저래하다 전기 엔지니어를 약 5년간 하게되었다. 사실 참 경력적으로 참 뚱딴지 같은 일이다. 그래도 회화는 걍 쬐끔 했던지라 회사에서 운이 좋아 외국인들도 많이 상대하고 해외도 종종 갔더랬다. 그리고 이민결정이 나서 와이프를 따라 미국에 왔는데.... 난 뭘 먹고 사나? 무엇을 하나? 가 큰 이슈였다. 사실 이민준비 때 와이프가 항상 말하는 것이 미국가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근데.. 솔직히 어찌됐든 돈이 없었다, 그랬지만 미국와서 그냥 아무일이나 잡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래서 무작정 와이프가 일하게 될 병원 근처에 학교 범죄학을 하려고 했기에, 그 과가 존재하는 가장 가까운 학교인 인디애나테크(현재 재학 중인)을 선택하여 어떻게 학교를 갈지 고민하였다. 일단 미국도착전 메일을 통해 학교 담당자와 대화를 트고 미국 도착 후, 집을 잡고 차를 잡고, 이것저것 첫째 아이 학교며.. 이런 저런 것들. 기본정착에 필요한 것을 미련한 후, 나의 학교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난 정보에 둔감한 편이라 걍 무조건 학교를 찾아갔고, FAFSA라는 정부의 보조를 받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주권자의 특권을 느낄 수 있는 첫번째 혜택이었다. 예전 뉴욕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학교가기전에 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Fafsa의 보조금은 졸업후 갚아야 하는 돈과 안 갚아도 되는 돈이 있다. 잘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이 부분은 아주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만약, 정보를 요구하는 분이 있다면. 더 자세하고 정확한 용어로 설명드리겠다.

그리고, 학교에서 기존의 대학성적을 평가하여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학점이 좋아서는 아닌듯하다. 어쨋든 난 그냥 되든 안되든 하는 심정으로 학교를 진행했다. 나중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나에게 여러가지 운이 따랐다. 하지만 누구든.. 영어를 잘하던 못하던 난 누군가가 나같은 사정이라면, 돈 없고 학교 가고 싶은데 영주권을 가진 입장이라면. 무조건 학교에 찾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무조건... 그래야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안된다하면 졸라라. 계속 졸라서 그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가 좀 안타까운 존재며,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의지의 사나이 또는 불타는 감자 지만 현실의 가혹함으로 짓눌려 꽃 피지 못하는 어린양같은 존재라고 여기게끔 만들어라. 나의 경우는 이런 동정심자극에 많은 운이 따랐다. 이렇게 해서 어쨋든 나의 학교는 시작되었다. 주변지인들 말씀으로는 이민후 1-2년 사이에 학교가지 않으면 학교를 가서 공부하는것은 거의 힘들다고 한다. 왜냐하면 3년정도 지나면 환경에 적응한데다가 그 동안 돈벌이를 하기 때문에 생활이 그 돈벌이에 맞추어져 있다는 거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학교 공부하려다가 포기된 이유가 거기 있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그다지 유명한 학교도 아니지만 현재로는 최상의 조건이다. 우선 집에서 가깝고, 내가 하려는 공부인 범죄학이 있다. 하지마 가끔 엔지니어링을 전공할 걸하는 후회가 드는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링은 상당히 높은 페이를 자랑한다. 반면 내가 공부하는 범죄심리 범죄학분야는 생각보다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였다. 특히, 아시아인이 적게 사는 중부의 경우엔 말이다. 그리고 경찰 및 교정직 공무원이 되기위해선, 시민권이 필수였고, 나이제한도 37-8정도로 있었다. 그 말은, 나같이 갖 미국으로 넘어온 이민자가 지금 당장 일하기는 쉽지 않은 곳이란 말이다. 하지만, 여러번의 좌절과 다짐 끝에 나는 이길을 계속 가기로 정했다. 그 사이에 와이프와 많은 다툼도 있었다.

자, 그럼 나의 경우, 미국 간호사로 일하게 된 사람의 배우자로서 다음의 것들을 고려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것들은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내 생각엔 이민을 하느냐 안하느냐에 관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생살이는 보이는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1. 미국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타켓설정.

2. 타겟에 대한 나의 애정 또는 열정은 어느 정도 일까?

3. 가족문제를 떠나 내 자신을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4. 혹여, 역이민 즉-미국에서 한국으로- 응 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무슨일을 할 수 있는가?

5. 객관적인 나의 영어 실력은 어떠한가?

나는 위의 중요한 것들을 많이 간과하고 여기에 온 것 같다. 최소한 위의 언급한 것들에 대해서 나 자신이 수도 없이 되뇌이며 준비해야 했었다. 위의 것들은 어쩌면 이민준비에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지만 막상 미국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바로 부딪칠 사안들이다. 나는 여러 운으로 그나마 학교도 다니고 한 1년만 공부하면 졸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운을 따라 살 수 없기에 대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나 자신을 즉시하고 미국에 오지 않으면. 큰 화가 찾아온다. 대가는 자기비하와 방황, 그리고 가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가족 친지가 사시는 분들은 좀 덜하겠지만 이민자의 생활은 기본적으로 외롭고 고독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지하게 객관적인 눈으로 현실을 보기로 한다. 와이프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한 나는 미국에서 신분을 가진 무능력자에 불과하다. 정말 실력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 실력을 내보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 학위를 가지고 인정 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전공의 직업이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으나 기본적인 분위기는 미국에서 취득한 학위 및 자격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주권이 없는 경우는 또다른 문제를 가지는데, 그건 실력이 충분하고, 영어가 유창하며, 그 분야에 대한 경험 또한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취업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건 바로 신분을 위해 직원을 고용하는 회사가 그 사람에 대한 신분 및 기타 서류에 대해 신경을 써줘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회사에 계속 다니는 이상 영주권 취득 전까지 부가적인 도움을 줘야한다는 말이다. 일례로, 내가 여기서 가족처럼 지내는 인도 친구가 있다. 와이프도 친구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그들은 최종 학력 석사출신들이다. 간호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친구의 와이프 동생이 기계엔지니어링 석사 출신이며, 인디애나주립대 석사를 나왔다. 기회가 되어 그의 레쥬메를 보았는데 자격증 및 경력이 화려하다. 또한, 영어는 기본적으로 유창하다. 그 와이프 내집안이 부유하고 기본적 교육이 탑재되어 있는 인도 상류층 사람들이다. 그런 그가 간신히 이번에회사를 잡았는데, 그 간에 약 100군데 넘는 곳에 서류를 넣었다고 한다. 뽑히지 못한 이유는 영주권. 그 만큼 신분 문제는 취직과 밀접하다.

단, 여기서 학사 또는 석사를 취득하고 영주권이 있는 상황이라면 기회는 많을 수 있다. 주마다 도시마다 또는 나이 및 전공 분야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신분, 실력,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 란 놈이다. 나의 경우 그렇게 비상한 머리도 아니거니와 언어적 두뇌가 뛰어나지도 않아, 하면 할 수록 어렵다. 예전에 미국에 지낸 것, 한국에서 회사다니며 영어를 한 것, 그런 것들의 도움으로 뭔가를 지꺼릴 수는 있으나 계속 허전하다. 아직도 부족하고 겉도는 계속되는 느낌. 차라리 한국에서 열심히 영어 공부한 분들보다 실력이 더 떨어질 거란 생각도 있다. 약간의 눈치 및 살다보니 생기는 순발.. 그런 것들에 아직도 많이 의지하며, 어떤 날은 초딩도 이것보단 낫겠다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형편없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런 내가 대학을 다니고, 큰일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스럽다. 하하하. 영어는 언어실력 이상의 것이다. 생활이고, 삶의 즐거움, 사교활동, 자신감, 내가 진짜 미국에서 살고 있다 아니다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것. 영어에 대한 것은 지겹도록 더 이야기할 수 있다. 또 그런 내가 조금 있으면, 지역 보호관찰소 인턴쉽 프로그램에 이번주에 면접을 보기로 했으며, 모 지방경찰을 지원하여 진행하고 있다. 그 부분은 진행이 계속적으로 성공 되는 데로 정보를 드리기로 한가. 그리고 돈도 없는 내가 학교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와이프의 도움이 크지만, 내 마음가운데 계속적으로 외치는 이것을 공부해야한다는 공명이 내 가슴을 울리고 그에 따라 나의 몸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저번에도 언급했지만, 영주권을 가지고 영어가 안되거나 약한 한국분이 학교를 계속 유지하며 다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분들이 실력과 지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아니,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다. 여기 미국은 기본적을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사회. 그건 돈을 벌수 있는 기회는 기본적 신부 문제를 벗어나고 나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여기선, 내가 뉴욕이나 LA chicago 등의 대도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전체 주를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며, 지원자가 성실하며, 어떤일든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는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웰컴이다.그래서 돈의 유혹에서 일찍 빠져나가기 위해 공부를 하려면 미국에 가기전에 준비하여 가자마자 공부를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이든, 노가다든, 유통업이든 닥치는대로 주변에돈되는 일들을 먼저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시간을 인내하고 인내하라. 그냥 지나가는 순간과역경을 버티고 인내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 목사님의 말이기도하고 나의 친구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인도 친구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하느님을 믿는다면, 지속적으로 짬나는데로 기도하라. 불평, 짜증, 고뇌,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의 시간들을 기도로 채워라.

여기까지 나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직접적이며., 실용적인 정보와 의지를 이끌 수 있는 그런 것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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