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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풍회 Jan 25. 2020

미국간호사이민자남편

불만

나는 이 장에서 나의 개인적인 미국생활의 불만 뿐 아니라 이민자가 느낄 법한 그리고 주변의 이민자들이 공통적으로 느껴 보았을 법한 불만들을 이야기 한다. 또한, 나의 글은 솔직함이 담긴 글이길 원한다. 이 글은 이민자로 살면서의 나의 치부도 자랑도, 그렇다고 우울함이 담긴 호소도 아니다. 다만, 나 개인을 위한 위로요, 나와 비슷한 처지 또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거나 그것을 계획삼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요 도움의 글이 바란다.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한 삶을지향할 수 있는 나의 시간, 그들의 시간들이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쓰는 글이다. 그리고 아내의 말을 참고하여, 글의 방향이 부정적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아내가 하는 말은 이 글을 보면 누가 이민 오겠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볼 것이다. 너 왜 이민갔어? 좋은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그러면, 난 할 말이 없다. 궁색한 변명을 들자면, 딱 하나밖에 생각이 안 난다. 한국보다 자유로운, 구속이 적은 듯한 사회 분위기. 그래도 난 여기 살아가고 있다. 누가 여기의 삶을 강요한 것이 아니다. 아내에 대해서 내가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이런 고생을 해야하냐고 불만을 늘어놓은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럼 아내는 되물을 것이다. 그럼 왜 나의 미국 이민 추진을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았냐고. 그렇다. 나도 막연한 미국의 동경심과 여기 오면, 많은 것이 새롭게 변하고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온 것이다. 그 것이 이민 초반에는 얼마나 불만이었는지 모른다. 그 강한 감정이 아내가 일가고 없는 자리, 나 혼자 아이들을 보고,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없는 외딴 곳에서 고립되어 계속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의 투정을 받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인생에 대한 한탄을 하며, 제 자리 걸음으로 사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을 움켜 잡는 중에 계속 용솓음 친다. 그러다가 내려가고 올라가고 하다, 아내가 힘든 몸을 이끌고 퇴근하면, 화가 그곳에 미친다. 불만이 계속 발전한다. 이민 초반에 그것이 너무 힘들었다. 언제든지 계속 한국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너는 그래도 직장이라도 있지, 계속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잖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미국간호사가 꿈이잖아.. 근데 나는.. 그런 불만들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계속 돌고 돈다. 그리고 반복한다. 싸우고, 용서를 빌었다가, 억울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그 동안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힘들어 한다. 요즘은 큰 아이가 나에게 예전에 엄마아빠 많이 싸운 일에 대해서 떠올려 말하곤 한다. 가슴이 아프다. 단, 희망이 있다.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환경 때문에 성숙해진다. 나도 약간은 성숙해졌다. 그때보다는. 단, 솔직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 암담한, 그리고 낯선, 밖에 나가면 외계인들이 나를 공격할 것 같던 심정으로 살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신이 없다. 그런 격정적인 불만들이 다시 쏟아져 나오는 것을 억누를 자신이 없다. 다만, 조물주 또는 보이지 않는 큰 손길 -종교적인 색채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은 다행스럽게도 견디다가 죽지 않을 만큼의 시련을 주셨고, 다행히 모든것이 조금씩 나아져 간다고 느낀다. 그리고 상황도 많이 변했다. 아내는 영어에 대한 불편, 일 자체에 대한, 동료들과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호소하는 일 보다는 환자들의 상태, 그 사람들의 특히한 가정사에 대한 일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것은 그래도 모든 것이, 어렵고 불만스러웠던 그것들이 약간은 나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여긴다. 나 또한, 이번 마지막 학교의 학기를 마무리하고 있고, 좋은 성적을 얻고 졸업할 것으로 예상이 되며, 보호 관찰소 인턴쉽 기회를 가졌고, 경찰 지원하여 한곳에서는 필기시험 통과/신체검사를 앞두고 - 진행 중에 있으며,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 무언가를 찾고 있고, 아이들에게 조금 관대하고 핀잔을 주거나 화낼 상황에서 내자신을 누를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며, 주변 사람들의 사정에 대해 기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 하지만, 난 이 모든 것들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는 말은, 그 시간 동안 무언가 몸부림쳤기에 바뀌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저절로 이루어 지는 법은 없다. 'No pain, No gain'. 조건은, 사람은 환경의 도움, 즉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절대 그 사람이 이루고자하는 의지, 꿈, 또는 미래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여기 미국에서 절실히 느낀 진리다. 어려울때 '나의 인도 친구 Sunny'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마음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없었다면 그리고 교회 식구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학교에서 'Brook, Michelle, Nicole, Sydney, Prof. Spielman, Prof. Lombardo etc.' 그리고 나이는 어리지만 성숙하게 나에게 다가와 말해준 'Jacob, Logan, Reggie etc.', 아들의 친구 아빠인 'Paul'.. 이런 모든 사람들의 격려와 그때 맞춰진 감정의 교류, 따뜻한 말, 위로, 급한 상황에서의 절실했던 도움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서 이런 것들을 회상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는 '감사'가 답이며, '추후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도움의 손길'이 나의 개인적인 답니다.

사실, 이장은 불만으로 가득차야 하지만 희망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이 글은 감정적 토로의 장으로도 이용되어야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의지, 희망을 끌어올려야 하는 기능도 가져야 하기때문이다.

그렇지만 2가지 우리가 이민자로 살고 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부딪쳐야하는 문제, 불만이라기보단 근본적 시각에 대한 문제를 간단히 이야기 해보고 싶다. 왜.. 감정은 토로하고 풀어야 우리가 살 수 있는 힘을 다시 되찾을 수 있고, 풀어야 희망으로 가는 방향이 보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나의 불만. 너도 인종차별하면서 백인보고 인종차별한다고 하지 말아라. 인종차별은 미국의 고질적인 사고의 밑바탕 중 가장 더럽고 불결하며, 빨리 없어져야 하는 쓰레기적 발상 중 하나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것은 나의 생각, 즉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개개인의 사고에서 왔다. 내가 여기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잘했다고 여기는 부분중 하나가 많은 리포트를 인종차별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보냈고 그것에 대해 많은 자료를 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장 깨달은 부분은 내 내면에 이미 백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흑인 또는 흑색스러운 인종들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가 박혀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기간이 소요되었고, 현재도 없어지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흔한 예로, 여기 인턴쉽 중에 보호관찰소 직원들이 많은 수가 여자이고, 대부분이 백인이다. 단, 흑인들이 있는데 대하기가 백인들보다 편하다. 더 개인적으로 다가가기 편하고, 특유의 악센트 때문에 영어를 듣기는 까다롭지만 그들에게 더 다가간다. 왜?? 백인들이 더 위치적으로 위에 서 있으며, 그들은 조금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쓸데없지만 어쩔 수 없는 깊은 내면적 바탕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이야기 하면, 아름답고 고귀한 그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내가 하찮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 우리 자신을 자세히 보자. 왜 미국이라는 곳에 오려고 하는가? 맞다. 시스템이 좋고, 선진국이고.. 여러가지. 하지만 그 중 서양 생활을 동경해서 그런 부분이 있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 문화를 동경한다는 것은 다른 그들의 사고를 생활방식을 동경한다는 것. 그건 그들 자체를 동경한다는 것.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국을 떠올려 보면, 내 머리 속에는 백인이 떠오른다. 르네상스, 종교 개혁, 엘레강스한 귀족들이 떠오른다. 흑인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적어도 내가 가지는 고질적인 문제다. 그것이 삶에서 인종차별로 이루어진다. 혹자는, 뭐 그런걸 인종차별이라고 말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건 다른이들의 말을, 또래집단의 영향이던, 그런 모든 것들이 이런 사고를 만들어 낸 것이고 이런 이미지들이 결국에는 인종차별을 만든다. 백인우월주의. 백인이 만들었지만, 지지자는 소수민족, 그 이외의 인종들일 수 있다. 'Micro-aggress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약간 신종어 중 하나인데, 'Discrimination 또는 Segregation'이라는 대놓고 인종차별하는 개념이 아닌 인종차별인가 아닌가 햇갈리는 데 결국에는 인종차별인 그런 개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어떤 백인은 도서관을 들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 가족에게 "너 차이니즈?"라고 물었다. "아니, 코리안 왜?".. 당황 "아니, 나 며느리 차이니즈 있어. 비슷해서. 좋아해서..동양사람들.." 그녀는 인종차별주의자다. 어떤 백인도 그들끼리, 또는 우리가 묻지 않는다. "너 이똘리안? 저머니?"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아메리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기존 체제이며, 하양이들이 아니면 기존체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백인만 아메리칸인가? 흑인, 황인, 히스페닉계, 인디언.. 아니 사실 네이티브 아메리칸. 모두가 아메리칸이다. 교회 목사님 말씀 중, "우리는 백인들을 백인이라고 부르지만, 흑인들은 흑인 애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애들이 아니다. 비하, 무시의 사고가 그런 호칭을 만들었다. 이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백인경찰 비무장 흑인 사살, 특정 국가 이민 불가, 슬레이버리의 잔재 등 수도 없는 영향을 미친다. 그럼, 나, 한국인의 초점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적 소통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노력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왜냐면, 내가 사람을 인종에 따라 구분하여, 이사람은 말을 걸고, 이사람은 말을 걸지 않고 하는 그런 행동들이 바로 인종차별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백인이, 청교도들이 미국 사회라는 것을 구축하여 성장 발전시키는데 많은 일조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다른 인종들이 미국사회를 이렇게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그들은 머리가 비상하고, 학식이 풍부하고, 고귀하고, 선을 추구하며, 모든 것이 효율적이며, 합리적이고 아주 이성적인 사고를 가져서 이런 큰 미국이라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런 거대 담론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난 우리 이민자들의 곤역 가운데, 우리의 정체성, 자존감, 한국인으로써의 긍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고질적인 사고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발전과 나아감은 잘못된 인식을 버림으로 시작한다고 여긴다. 한국분들은 항상 학군에 대해서 많이 신경쓴다. 아이들의 교육과 장래에 관한 문제. 그 학군의 중심에는 그 동네에 백인이 주를 이루냐, 흑인이 주를 이루냐. 그것을 본다. 또는 큰 도시의 경우, 아시안들이 많냐 적냐.. 대부분은 백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좋은 학군이 된다. 부자 동네들이 좋은 학군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메인 스트림이다. 나부터도 흑인들이 밀집한 곳은 음침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흑인들의 밀집지역이 범죄율이 통계적으로 다소 높은 것은 사실이다. 흑인제소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마약도 그들이 많이 한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보면, 그들이 억압된 생활 속에서 지내왔다는 것. 그것이 그들 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는 것.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난 내 자식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백색친구,흑색친구,황색친구,심지어 불그죽죽한 친구 모두 같은 친구들이며, 거기에 억매이지 말라고. 또한 두루 친하게 지내라고. 적어도 내 자식은 나같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척 살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혹시나 결혼한다고 데려온 며느리가 흑인 또는 히스페닉이라고 당황하지 않는 부모로 성장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실 개인적으로 인종에 대해서는 할말이 참 많다. 차후에 장에서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단, 우리가 미국에 사는 이상, 우리는 한국사람인 동시에 미국사람이 되는 것이고, 미국의 사회 발전에 기여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견해이고, 만약 그 발전에 도움이 되려한다면, 개인적인으로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모든 인종들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고 소통해보고 그들의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다는 것이다. 그 말은, 같은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고 주는 것 뿐 아니라, 우린 타 민족, 인종에게 도움을 받고 줄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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