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유엔시민공원
계획에 없던 곳을 가게 됐다. 부산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이다. 퓰리처상 사진전을 본 후 부산박물관에 갈 예정이었는데 이곳이 더 가까웠고, 왠지 모르겠지만 이곳으로 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22 퓰리처상 사진전을 본 후 한걸음도 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쳤던 이유가 크다. 원래 길은 내가 가는 대로 바뀌는 거니까!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공원의 백목련이 가장 기억에 남아 기록하고자 한다. 목련은 3~4월까지 개화하는 꽃으로 너부데데한 꽃잎이 보이면 봄이 왔다는 것이다. 목련은 고귀함, 숭고한 정신, 이루지 못한 사랑의 뜻이 있다던데 의미를 나중에 알고 나니 내가 왜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던지 알게 됐다.
사람들은 백목련 길을 배경으로 가족끼리, 친구끼리 사진을 찍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보내고 있었다. 길 오른편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내 눈앞에는 여유로운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 길을 두 발로 딛고 걸어 다닐 수 있음을 발바닥이 바닥에 부딪힐 때 느끼고자 했다.
나는 원래 답사 다니며 사진 찍는 것, 정적인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내가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원 출구를 나오면서 알게 됐다. 울적한 마음이 사진을 차마 찍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같이 갔던 애인은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같은 전공을 배우고 있다.(학과에 대한 얘기는 워낙 독특한 학과이기에 추후에 천천히 하고자 한다.) 백목련 길을 걷더니 이것도 이 나름의 메모리얼적인 요소로 심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추모의 의미를 다른 구조물이 아닌 나무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런 듯하다. 요즘 세상은 확실한 정보를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게 많다. 직설적인 안내판과 표지판이 실용적이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엔시민공원에 심어져 있는 백목련을 통해 우리는 안내판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임은 틀림없다.
3월의 부산은 윗 지방보다 목련은 잎이 거의 다 벌어졌으면서 그와 함께 벚꽃도 점차 만개하고 있는 동네이다.
시간은 당연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듯 목련 잎이 흰빛을 잃은 후에는 바로 벚꽃이 화사하게 맞이할 것이다.
나는 목련을 보고 생각한다. 오늘 이곳에서 과거를 보았고 미래를 살아간다. 제 임무를 다한 목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