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by 민수연


죽지 못해 살아낸 날들


'오늘도 죽지 못했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순간이 아닌 죽지 못한 것에 대한 탄식이 반복되었다. 내가 덮은 이불은 늘 무거웠고, 이불 속의 나는 아침마다 잠식되는 것 같았다. 이불은 더 이상 포근한 존재가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하루가 다시 시작됨을 알리는, 나를 짓누르는 물체였다.


온종일 앉을 틈 없이 일하다 보면 발이 뜨겁다 못해 깨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지켜내야 할 건 많은데,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매일 움직였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일을 했다. 무엇을 위해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멈추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웠다.

밤이 오면 또다시 내일을 살아내야 했고, 침대에 몸을 눕혀도 쉬지 못했다. 꿈속에서도 일을 했고,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수록 어둠은 더 짙어졌고, 눈을 뜨면 슬프게도 또 아침이었다.


그 즈음 믿었던 관계가 무너졌다. 가까운 이들이 나를 이용했고, 삶은 한순간에 뒤집혔다. 분노와 허탈감이 뒤엉켰지만 해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았다. 전원을 꺼버리면 끝나는 쇼였으면 좋겠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무너진 채로도 살아야 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씻기고, 사랑해야 했다.

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작업실로 향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여전히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모순된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겉으로는 진심을 가장한 거짓과, 위로처럼 다가오지만 결국 나를 짓누르던 것들. 안락함을 상징하던 이불은 어느새 나를 눌러 숨 막히게 했고,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 두려워 잠은 더이상 평온하지 못했다. 쉼과 위로, 안락과 평화 같은 말들이 오히려 가장 큰 고통의 형태로 다가왔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모두 ‘가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무겁고, 따뜻하지만 차가운 모순의 덩어리들. 그것들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 모순 속의 일상을 그림으로 다시 마주하려 했다.


민수연, 출근길 way to work,61.6x90.9cm, mixed media on pannel, 2024



그림에 등장하는 슬라임은 가짜와 모순의 상징이다.
떨어지는 듯하면서도 달라붙고, 어떤 형태로도 규정되지 않는 유동적인 유기체다.

나를 안락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이불처럼, 결국은 무게만 더해지는 가짜의 안락함이다.


아침은 나를 온전히 마주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우리는 무의식의 잔상을 안은 채 먹고사는 문제 앞에 선다. 비몽사몽으로 각자의 일터로 향하고, 안개 속을 걷듯 하루를 반복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게에 짓눌린다.


단편적으로는 출근길이 그렇다.

먹고사는 문제에 지쳐 매일 아침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사람들. 한 사람의 시점으로 그렸지만, 그의 주변에는 같은 무게를 견디며 슬라임에 짓눌린 수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현대인’이라기보다 인간 그 자체다. 인류는 언제나 생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탈을 쓴 모든 것들. 포근함을 가장한 족쇄처럼,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가짜이면서도 모순을 품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에 지친 우리, 나날이 무거워지는 가짜의 안락함, 그 안에서 버텨내는 삶의 모순을 슬라임이라는 매개에 빗대어 짊어지고 가는 '우리'를 그렸다.

'출근길(Way to Work)'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애환과 더불어 나날이 무거워지는 가짜의 안락함에 대한 고찰의 상징이다.


생존의 반복 속에서 아침은 매일 나를 찾아온다.



오브제와 당위성


<출근길>은 MBN에서 진행된 <화100> 두 번째 미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두 번째 미션은 ‘라이벌 데스매치’ 형식으로, 둘이 한 조가 되어 하나의 오브제를 선택하고 그로부터 작업을 도출해내는 과제였다. 우리 팀은 20팀 중 17번째로 선발되어 남은 정물이 세 가지뿐이었다.

아그리파 석고상, 라면, 그리고 슬라임.

파트너였던 작가님도 추상화를 주로 다루는 분이었기에, 실험적이고 변화무쌍한 슬라임을 택했다.


나의 숙제는 단순한 정물 재현이 아닌,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작업에 착수하기 전 깊게 생각한 부분은 '당위성'이었다.

왜 슬라임이어야 하는가?


미술에서 ‘오브제’란 일상의 물품이나 자연물을 본래의 기능과 맥락에서 분리해, 다른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채 예술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19세기 후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으며, 고정된 미적 체계를 넘어 ‘존재의 재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즉, 오브제는 사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기존의 사고를 흔드는 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개념 아래, 나는 슬라임을 통해 두 가지 방향에서 실험했다.


첫째는 기능의 상실이다. 원래 슬라임은 무언가에 ‘담기는’ 물질이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감싸거나 덮는 용도로 전환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포장지처럼, 혹은 보호막처럼. 그렇게 되면 슬라임은 단순한 놀이감이 아닌, 외부 세계를 삼키는 새로운 매개체로 확장된다.


둘째는 크기의 변화다. 상상 속에서 슬라임의 규모를 극단적으로 확장해보았다. 만약 건물이나 도시 전체를 덮을 수 있다면? 혹은 바다가 물이 아니라 슬라임이라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바다는 이불처럼 덮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바다가 젤리같은 제형이라면 들어 올려 나뭇가지로 고정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바다를 뒤집어 써볼까?

그 상상에서 여러 드로잉이 도출되었다.


슬라임으로 건물을 싼다면 '왜' 싸이는 대상이 건물이며, 싸는 물체가 슬라임이어야 하는지 당위 문제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슬라임으로 바다를 표현한다면? 하필 파란색 슬라임을 정물로 부여받아 바다와 연관짓기는 너무 뻔한 도출이 아닐까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슬라임의 성질에 대해 다시한번 탐구했다.


슬라임의 특징

1. 액체도 고체도 아니다.

2. 흘러내리는 모습이 꼭 녹아내리는 것 같지만 차갑다.

3. 두께와 모양에 따라 투명해지기도, 불투명해지기도 한다.


열이 없는데 녹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지점에서 '모순'이라는 키워드를 잡았다.

고체처럼 보이지만 액체와 같은 성질이 있어서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삼키는 물체 같았다.

'슬라임이 내 머리 위에 있다면 나도 언젠간 발끝까지 삼키겠지'라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그와 비슷한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잠식되는 것 같았던 시간을 떠올렸다. 바다와 슬라임 사이에 '이불'이 등장했다.



이후 나는, 슬라임 같은 바다 속에서 걸어나오는 인간의 이미지를 구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흥미를 위한 장면이 아니었다. 슬라임을 뒤집어쓴다는 건 질척이고 무겁고, 결국엔 잠식당하는 감각이다. 그 압박감은 내가 아침마다 침대 위에서 느끼는 감정, 몸을 일으켜야 하지만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작업 과정과 재료 선택


슬라임의 유동성을 그림에 옮기는 방법을 고민했다. 촬영장에는 다양한 재료가 있어 원하는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었지만, 나는 스케치 과정에서 배경을 최소화하고, 메시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레진으로 슬라임과 같은 형상을 만들고, 말랑하게 굳어갈 때 출근하는 인간을 쭉 밀어 넣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레진이 굳는 타이밍이었다.


너무 빨리 굳으면 형태를 조정하기 어렵다.

너무 늦으면 메시지가 모호해지고 잠식의 느낌이 사라진다.


2액형 레진을 사용하였는데, 이 재료는 굳는 시간 계산과 인간의 위치 조정이 핵심이었다. 인간을 깊게 넣으면 형상이 잘 보이지 않고, 얕게 넣으면 잠식되는 느낌이 부족하다. 다른 매체를 덧붙이거나 위에 레진을 덧입혀도 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반복적인 시도와 세밀한 조정이 필수였다.

그 자체로 임팩트가 있어야 했기에, 불필요한 손질이나 덧칠로 흔적이 남는 것을 피하고 가장 완성도 높은 하나를 만드는 데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도 끝에 가장 잘 구현된 하나를 최종 선택했다.

(덕분에 판넬 5개를 혼자 해 먹었다.)




배경과 마감


서바이벌에 참여한 이유 중 하나는 마감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다. 내 작품은 주로 상업 갤러리에서 판매가 이루어졌으므로 판넬의 옆면, 모서리, 뒷부분, 포장까지 명품 검수하듯 꼼꼼히 다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작업을 위한 마감이 아니라 마감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은 프로니까 그래.’라며 스스로 합리화했지만, 그림이 기성품과 무엇이 다른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섭외 문의가 들어왔을 때, 서바이벌이라는 틀 안에서 작업 본질을 더 연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션 수행을 위한 그림은 판매 위주의 작품이 아닌, 작업의 근본에 집중하는 그림이었기에 배경 처리와 마감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슬라임 인간’을 어떤 처리도 거치지 않은 날것의 판넬 그대로 내는 방안도 고민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중앙의 슬라임 인간 밀도를 극단적으로 높이거나, 캔버스 크기를 훨씬 키워야 했다. 30호는 시야를 압도할 만큼 크지 않아, 타카심은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며, 이를 ‘의도’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추어적인 변명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규격은 30호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타카심과 판넬 옆면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배경에 집중해서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췄다.




나의 번외록


이 그림은 내게 번외같은 작업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옥같은 아침도 사라지고, 이제는 그림으로 기억한다. 이렇듯 시간은 흐르고 나는 또 살아간다.

언젠간 이 슬라임을 활용한 연작을 내 볼 계획이다.





ARTWORKS


스케치 - 레진으로 어디까지 덮을 것인가


스케치 - 인간 연령대 고민


스케치 - 배경 고민


처음엔 다소 컸던 인물 사이즈, 메니큐어로 작업


모델은 직접하는 편


레진 연구


마카로 작업한 스케치


선택 받지 못한 그림 중 하나


판넬 도둑


실험실


작업노트 정리본


MBN <화100> 방영분



슬라임처럼 찍어준다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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