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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May 05. 2020

이어폰에 대하여.


이어폰의 정의
: 귀에 끼우거나 밀착할 수 있게 된, 전기 신호를 음향 신호로 변환하는 소형 장치. 휴대용 라디오나 보청기, 음악 감상용 장치에서 혼자만 들을 때에 사용한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내 생활에 필수적인 사물을 고르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어폰. 두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풍성한 볼륨으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홀로 있는 기분이 든다. 하루 중 그 잠깐의 순간이 나에겐 매우 소중하다. 


그런데 사전적 정의에서부터 ‘혼자만 들을 때에 사용한다.’고 쓰여 있어 반가웠다. 이어폰은 소리가 나오는 장치가 두 개기 때문에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한쪽씩 나눠 끼는 경우도 생기는데, 난 그런 상황을 불편해하는 편이다. 한쪽 귀로 음악을 듣는 내내 ‘옆 사람도 이 음악을 좋아할까, 볼륨 크기는 적당한 가, 나 때문에 자세가 불편하진 않나.’ 등의 걱정을 하느라 온 시간을 쏟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어폰은 온전히 자신의 두 귀에 꼽고 혼자 들어야 제 기능을 다하는 물건이 맞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로맨틱한 상황은 예외로 하고 싶지만, 불편한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분 좋은 불편함일 뿐! 


음악 감상의 기능 외에도, 이어폰은 이로운 점이 많은 사물이다. 주기적으로 세상과 단절해줘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이어폰을 꼽고만 있어도 사람들에게 ‘나한테 말 걸지 마세요.’ 하는 신호를 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걸어오는 낯선 이에게 덜 미안한 마음으로 못 들은 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를 막음으로써 입까지 닫게 하는, 정말 혁신적인 사물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어폰의 생김새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 지금 이어폰 꼽고 있어요.’ 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줄이 사라졌다. 바야흐로 블루투스 이어폰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애플의 ‘에어팟’이 있다. 처음에는 귀에 난 버섯 같은 모양새가 영 별로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니와 30만 원대에 달하는 비싼 가격에 놀라 며칠 흥하다 말겠지 싶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귀에 그 고가의 버섯을 꼽고 다닌다. 심지어 그 틈에서 꼬인 줄 푸느라 낑낑대고 있는 내가 먼 과거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며칠 새에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에어팟'을 비롯한 블루투스 이어폰들이 단순히 최신의 것이라서 유행하는 건 아닐 거다. 오히려 오래되고 불편한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기도 하는 시대니까. 밖에선 ‘에어팟’을 쓰면서 집에선 또 다른 비싼 값을 주고 LP 음반을 듣는 게 요즘 사람들의 소비 방식이다. 그들의 소비 가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성’이 아닐까 싶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든, 자기만족을 위함이든. 그리고 이런 흐름이라면 줄 달린 이어폰도 머지않아 ‘아날로그 감성템’으로서 그 값어치가 다시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나의 소비 가치 기준에서 이어폰은, 그저 내 두 귀를 막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아직은 남들에게 내가 이어폰을 꼽고 있음을 알리는 '줄'이 있어야 더 편한 것 같다.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든 나에게는 의미 있는 사물. 오늘도 나는 소란스러운 세상과의 단절을 위해 이어폰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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