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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May 05. 2020

이름에 대하여.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남자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그러다 여자 주인공에게 ‘하루’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점점 존재감이 생기고, 반대로 이름을 잃었을 때는 본체도 함께 사라진다. 존재와 소멸의 기로에 서게 하다니, 이름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다행히 대부분의 우리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출생신고 등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한 모든 과정에서 나의 이름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보통 이름부터 밝힌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4~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인터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부탁에 어설프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히는 아이들. 이어서 엄마의 이름은 뭐냐고 묻자 아이들이 해맑게 대답한다. “엄, 마!” 


그렇게 이름에 대해 생각하다 엄마가 떠올랐다. 살면서 자신의 이름보다 자식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는 분. 우리 엄마도 이름 석 자보단 ‘은주 엄마’라는 호칭에 훨씬 익숙하다. 심지어 본인을 소개할 때부터 스스로 “저는 은주 엄마예요~”라고 하실 정도니까. 아주 가끔 외가 식구들을 만날 때에만 “영희야.”하고 엄마의 이름을 불러주는데, 늘 그게 참 어색하게 들렸다. 영희 씨는 엄마가 되면서 점점 자신의 이름을 잃었다. 혹시 이름 말고도 잃어버린 게 많을까?


나는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못했지만, 직장인이 되고 30대 줄에 들어서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굉장히 어른스러울 거라고 예상했던 나이가 되었으나, 사실 나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것. 여전히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긴장되고, 친구들과 비속어를 섞어가며 나누는 대화가 너무 즐겁고, 심지어는 덕질도 놓지 못하였다. 앞으로 40대, 50대, 노년의 나이가 되어도 이 모습 그대로일 거라는 확신마저 드는 중이라 스스로도 걱정이 되던 참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떨까? 눈가엔 주름이, 손등엔 거뭇한 검버섯이 생긴, 누가 봐도 중년을 훌쩍 넘긴 여성이 되었지만, 엄마가 느끼는 감정 같은 것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 스스로는 아직도 ‘은주 엄마’ 혹은 ‘아줌마’란 호칭이 익숙하지 않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언제부턴가 화려한 색의 옷만 찾아입는 엄마가,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의 드라마에 울고 웃는 엄마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신체의 노화가 왔다고 감정까지 늙어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내 이름은 누구에게 얼마나 더 많이 불리게 될까. 이름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울적해졌다. 우선은 우리 엄마, 영희 씨의 이름을 찾는 방법부터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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