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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도씨 Dec 02. 2021

선생님, 저 잘 살고 있는 거겠죠?

내가 브런치에 일기를 올리게 된 이유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며 학창 시절을 회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참 재밌었지?'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도 있었네.' 라며 비합리적인 학교의 교육방침에 새삼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힘든 사회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쯤, 우연히 본가에서 펼쳐본 일기 속에 이런 글이 있었다. 머리가 멍해졌었다. '혹시 선생님은 미래를 볼 줄 아는 초능력자였을까?' 웃기지만 진심으로 생각했다. 19년 전 선생님은 10년 뒤, 20년 뒤의 내가 일기를 다시 펼쳐 볼 걸 아셨던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일기를 펼쳐 볼지도 말이다. 


코멘트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의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에 50대 남자 선생님은 흔치 않았었고, 검은 양복에 인상이 짙었던 분이라 그런 별명이 생겼던 것 같다. 많은 친구들이 선생님을 매우 무서워했다. 나 역시도 학급 첫날에 선생님이 무서워서 다른 반에 가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1학기를 보내면서 의외로 선생님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혼을 낼 때는 별명만큼 무섭게 혼을 냈지만, 혼을 내는 만큼 아이들이 칭찬받을 일을 하면 아낌없이 칭찬을 주었다. 얼굴에 깊은 주름이 생길 만큼 웃기도 자주 웃으셨고,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게끔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교과서의 질문을 읽어주시기도 했다. 아직도 선생님의 그 우스꽝스러운 말투가 생생히 기억난다. 


오래전 선생님이 남긴 한 마디를 보고 남은 초등학교 6년의 일기들을 그 자리에서 다 읽어보았다. 그렇게 내 우울의 역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길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과거의 내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나의 우울을 어떻게 보듬고 갈 수 있을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나를 좀 더 불쌍하게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10년 뒤 나를 위해 지금 이 생각들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운 좋게 통과가 되고 첫 글로 포털의 메인에도 올라가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이 특별한 사건들이 19년 전 선생님의 한 마디로 시작이 되었다.


어릴 때는 몰랐다. 그저 매일마다 자기 전에 빈 일기장에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고, 쓰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일기를 쓰지 않으면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그때 일기는 나에게 정말 귀찮고 없었으면 하는 숙제였다.



어릴 때는 몰랐다. 선생님의 검사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저 내가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 검사하는 정도로만 여겼었다. 저 글씨들 한 자 한 자가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20여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었고, 어른이 되어 일기를 다시 펼쳐 볼 나에게도 전해질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으셨다.


해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어른이 되어가는 것,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더욱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버텨내고 있는 사회생활 속에서 나는 아직 제대로 버텨내 본 적이 없다. 사실 버티기 싫었다는 게 정확한 말인 듯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어쩌겠니? 아무것도 아닌 거라 생각해야지."


무례함에 불쾌해하는 나에게 모든 어른들은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내가 정말 잘못된 걸까. 나는 왜 다들 가볍게 생각하는 것들도 쉽게 넘기지 못하는 걸까. 나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무례함에 매번 참고 살아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라면,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것이라면 이대로 삶을 그만두고 싶단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은 죽지 말고 죽이자고 생각하지만)


우리 착한 도경이는 잘 해낼 테니까 선생님도 믿는다.
영리하고 차분하고 사리를 분별할 줄 알기 때문에 잘할 수 있겠지?


한바탕 자존감을 갉아먹고 집에 돌아온 날에는 19년 전 선생님이 남겨준 코멘트가 마음속에 맴돈다.

선생님의 음성으로 다시 한번 이 위로를 듣고 싶다. 정말로.

 

선생님, 19년 동안 정말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저 지금은 괜찮아요. 

선생님처럼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제 이야기를 글도 쓸 수 있는 여유도 생겼어요. 

선생님, 저 잘 살고 있는 거겠죠? 잘 살아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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