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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의새노래 Jan 02. 2020

일기 대신 지면 신문을 선택한 이유

일기나 다이어리면 됐지, 왜 신문이냐고요?

지면 신문에 익숙해질 유일한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겁니다. 학창 시절 가족신문 숙제처럼요. 조중동과 한경오를 언급하는 순간, 독자가 되고 독자로서 신문을 품평하기 쉽겠지만. 막상 신문을 만들 때면 나오는 한숨에 ‘제법 쉽지 않구나’ 생각하고 맙니다. 기사를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얼마만큼 써야 하는지, 아니 육하원칙은 무엇이고 제호는 또 뭔지. 내 이름 집어넣은 ○○일보, ○○이네 신문. 네이밍도 센스 없어 기가 막히죠.


◇첫 인연, 지면 신문 편집인이 되다

사람은 당해봐야 깨닫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다섯 시간 들여 제작한 최초의 가족 신문이 지금도 자료로 남지 못해 무척 아쉽지만. 한번 만들어보니 또 만들고 싶은 이유는 지면 신문과의 인연 같습니다. 인연은 네 해가 지나서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학급 친구들과 셋이서 조를 편성하고 만들라며 학교에서 판 깔아준 전통을 주제로 한 신문이 기회였습니다. 남들은 들고 온 사인펜으로 한 글자씩 끼적였을 텐데. 세월아 네월아 무작정 적을 순 없으니 전날 밤 머리를 써봤습니다. 컴퓨터로 미리 타이핑해 인쇄하면 된다는 자신감 덕분에 다음날 등굣길이 무척이나 가벼웠습니다.


아래아 한글로 3,728자 분량의 기사 파일을 양해를 구하고 담임선생님 자리에서 6개 기사 하나하나 인쇄했습니다. 제 친구 윤석이와 준형이도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일일이 써야 할 기사를, 미리 타이핑해 한 면 전체로 준비해왔으니. 따끈따끈 A4 두 장을 가위로 오려 제호와 기사 위치를 논의했습니다. 남들은 색연필로 화려하게 만들 시간에 우리는 기사뿐만 아니라 준비해온 용어 설명과 광고, 심지어 사설까지 어떻게 배치해 볼지를 논의했습니다. 오늘 하루만은 편집인이자, 주필(主筆)이 되어 지면 신문을 꾸며 본 거죠.


기사 준비로 자정이 넘어서 잤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우리 사회에 제언을 고하는, 지금 다시 보면 유치해 보일 수준의 사설(社說)까지 마련해 보도-오피니언 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지면 신문을 만들고픈 욕망이 스치듯 지나간 인연으로 느껴졌습니다.


◇하루를 나열한 일기와 다이어리보다

초등학생 시절 매일 쓰던 일기에서 편집 욕구를 느낀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면 숙제로 남았을 일기일 테지만. 선생님 몰래 펼칠 때마다 정겹게 달린 댓글이 설렜습니다. 일기의 유일한 독자가 선생님이던 시절 하루 일과 어떻게 재밌게 써서 보일지. 좋아하는 소재를 기획 일기(?) 형식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다시금 손에 들린 일기 한 구석 선생님의 댓글은 연필로 글 쓰도록 도와준 힘이었죠.



기획 일기?│초등학교 6학년. 911 테러 당시 WTC 붕괴 원인을 다큐에 근거해 두 면 분량으로 집필했습니다. 일종의 기획 일기(?)인 셈이죠.


다섯 분의 독자를 졸업식과 함께 잃었을 땐 다이어리로 하루 일과를 정리도 해봤습니다. 하루들을 기록으로 남기기엔 뭔가 허전했습니다. 무미건조한 사실을 나열하기란 참 따분하기 때문이죠. 매일 차근히 적어내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벌어진 사건과 감회를 담아놓은 일기와 다르게 육하원칙으로 사건별로 일목요연 정리한 분석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스케줄 나열하듯 적어둔 다이어리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다이어리│수기(手記)로 작성한 다이어리는 하루 일과를 일목요연하게 적는다는 점에서 유용합니다. 7-8년 간 작성하다 디지털 일과속기록을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독서의 호흡이 긴 단행본과 주간지보다

시간이 흘러 수기(手記)로 남겨온 일기와 ‘일과속기록’을 폐지하고 디지털 방식인 아래아 한글에 하루 일과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의 나열과 성찰, 염원을 한 권에 담은 ‘감회록(感懷錄)’이 탄생한 배경이죠. 한 해 평균 50만 자 흘려댄 탓에 500~550쪽에 달했지만. 주간지처럼 잡지도 고민해봤습니다. 매주, 아니 매월 발행도 힘들뿐더러 5분 안에 정독할 수 있는 짧은 호흡의 글을 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사진과 그래픽 위주로 편성해야 하기에 주간지도 적절하지 않았죠.


무엇보다 1월 1일부터 순서대로 배치하는 연감(年鑑)이었기에 중요한 날을 1면으로 전진 배치하기 불가능합니다. 단편 기억이나 인터뷰, 영화 리뷰, 분기별 음악 차트도 담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우리 사회 트렌드를 싣고 음악 차트에 끼친 영향을 단편 글로 담아 간접적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한 페이지에 여러 개의 글을 배치하고 전체적 흐름 속에 무얼 어떻게 말할 건지. 고민이 깊어져 갔습니다.


감회록과 일과속기록│하루 일과를 구체적으로 나열한 일과속기록은 수기 작성 방식에서 디지털 작성으로 변화를 꾀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건을 따로 배치하기 어려웠죠.


◇지면 신문이야말로 기록과 정보의 모음집

기레기 소리 듣는 지금이야, 신문과 기자의 위상이 떨어졌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신문을 읽는다고 응답한 열독률은 85.2%였습니다. 2018년 열독률은 17.7%로 모바일 인터넷 이용률 80.8%에 비해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독률은 하락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면 신문을 손에 놓지 않는 이유는. 다양한 기록이 한데 어울러 제 손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광고 넣기도 바쁠 1면에 말 없는 이의 차디찬 무게를 가득 담아 놓은 말 잃은 광경을, 같은 나라임을 믿기 힘들게 담아놓은 사진 한 폭 쪽방촌의 지옥고를, 상징폭력으로 일컫는 부끄러움을, 발음이 나빠 볼펜 하나 사지 못하고 다시 줄을 서야 했던 첫 쇼핑의 실패에서 경험한 현실 사회주의의 담담함을, 충돌하는 신의와 기사 가치 속에서 급작스레 신문사를 퇴사했던 실패의 여운을. 그리고 시궁창 속에서도 별을 바라보는 우리네 삶 속에서 위로를.


편집의 매력을 발견한 이 지점. 지면 신문 매력에 빠졌습니다.


일기처럼 일상과 특별한 사건을 담을 수 있고, 다이어리처럼 단편 기억과 정보를, 연감은 아니지만 분기별로 소식을 실으면서 중요한 사건들을 1면으로 전진 배치할 수 있는. 인터뷰와 리뷰를 기사와 동시에 담아 시대의 트렌드를 간접적으로 지시하는. 언젠가 다시금 꺼내 볼 미래에, 직접 편집한 신문이 살아온 족적을 말해 줄 것을. 오늘의 기록과 정보 편집의 욕망이 살아 숨 쉬었습니다.


2013년 12월 7일, 자유의새노래를 창간한 배경입니다.


2013년 12월 7일: 자유의새노래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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