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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 May 02. 2023

나는 K-막내다.

 오자매 막내의 삶의 시작

"있으나마나한 다섯번째 딸"


나는 81년 서울 변두리 어느 가난한,

이미 딸이 4명이나 있는 집에

다섯번째 딸로 태어난 K-막내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책임감으로 포장되는 

K-장녀의 삶은

누군가 알아주고 치하해주기라도 하지만,


집안서열 최하위 K-막내의 설움은 그저 어린아이의 응석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부잣집 막내딸이라면, 늦둥이 코스프레라도 하여

엄마아빠 품에서 마음껏 땡깡이라도 부릴 수 있을텐데,

아쉽게도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지하셋방 집 다섯번째 딸이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펑펑 울었다."


이번에는 아들이겠지,

마지막 희망을 갖고 있는 힘껏 낳은 막내는

불행하게도 또 딸이었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엄마가 나를 낳고 슬픔에 빠져

몇날 며칠을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고모와 이모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너무 미워서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둥,

딸도 속상한데 못생기기까지해서 더 슬펐다는 둥.


그 때 당시에는 그게 상처인 줄도 모르고 어른 들이 웃으니깐 따라 웃기도 했는데,

다 큰 어른이 되서 곱씹어보니, 꽤나 상처가 되는 말들이다.



"내가 어쩌다가  낳아가지고"


내가 나이가 들어

이름있는 인서울 대학에 진학한 뒤,

남들이 알아주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나서부터

엄마가 나만 보면 하는 이야기다.


막내가 알아서 공부해서

어려운 시기에 진학하고 취업까지 했으니

꽤나 기특한 눈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입양될 뻔 했다는걸.

아니 입양되었다 돌아왔다는 걸.



"너무 가난해서 그랬어."


엄마가 나를 낳고 펑펑 울었던 그날,

옆 병실에는 아이를 사산하고 펑펑 울고 있는 어느 산모가 있었다.


그 여인은 한 일본인의 현지처였고,

아이 아빠가 아이를 보려고 한국으로 오고 있다며,

우리 엄마에게 아이를 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울었길래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

우리 엄마는 나를 줬다.!


잠시 가난에 정신을 놓고, 또 딸이니 그랬다며..

실수를 했다며..

젖물고 아무것도 모르고 방긋 웃던 내가 아른거려

며칠있다가 울며불며 매달려 다시 데리고 왔다고 했다.  



"다시 K-막내로"


다시 가난한 집 다섯번째 딸로 돌아와

43년째 잘 살고 있다.


한 방에 오자매가 살비비며 한 이불덮고 자고

큰 밥상 널찍하게 펴서 언니들과 같이 숙제를

하고

휴일에는 공중목욕탕 손잡고 들어가서

순서대로 사이좋게 등 밀어주면서

막내딸로 큰 사고 내지않고 순둥이로 자랐다.


무엇을 하든 부족함에 허덕이고

오롯한 내 것 하나 없는 삶에 불편했지만,


K- 막내의 삶은

나만의 것, 내 인생을 잘 만들고 싶어서

늘 바빴고 활기찼다.


그렇게 살다보니

남부럽지않은 직업이 생기고,  내 가족이 생기고, 내 집도 생겼다.


그 때

내가 부잣집 외동딸로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더 행복했을까.


현실적인 우리 엄마의 명쾌한 답.


"금방 들켰을꺼야. 너 못생겼자나..그 여자가 이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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