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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 May 30. 2023

함께 나이들어 간다는 것

오자매가 늙어간다

어렸을 때 부터 우리 오자매는

한 방에서 지냈다.


비좁았던 집에 방 속에 방을 하나 더 만들어

두 개의 방을 쓸 수 있던 시절에도,

굳이 방문을 떼고 한 방처럼 뒤엉켜 지냈다.


고만고만한 신장과 몸무게를 가진,

비슷한 외모의 곱슬머리 아가씨들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화장품을 쓰고,

같은 신발을 번갈아 가면서 신었다.


매일 밤에는 각자 정해진 자리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냥 잠든 적도 있고,

시시한 연예인 얘기에 낄낄 대다가 늦게 잔 적도 있고,

누가 시작한 슬픈 이야기에 함께 운 적도 있었다.


분명 재미 있지만,  조금은 불편한 한 방 동거살이 속에서

우리 모두 20대가 되고, 어른이 되었다.



20대가 된 우리 오자매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길어진 백수 생활에 방황하기도 하고,

만학도의 꿈을 위해 궁핍한 20대를 보내기도 하고,

대학졸업 후 취업이 어려워 진로를 변경하기도 하고,

신용불량자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원받기도 하고,

공무원 시험 합격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모두가 한꺼번에 무너진 적은 없었다.


늘 오자매 중 누군가는 그 속에서 힘을 내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중심을 잡아주면서 힘든 시간을 함께 극복했다.


그렇게 각자의 20대가 단단해져 가면서,

하나 둘씩 제 짝을 찾아 결혼을 했고,

우리 오자매 한 방 동거살이도

자연스레 마무리 되었다.




30대 이후 우리 오자매는

결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누군가의 아내로, 또 엄마로

카톡방 "오자매 토크박스"에 모여살고 있다. 


20대의 좌절 못지 않게

하루하루 녹록치 않은 삶의 연속이지만,

카톡방 동거살이를 통해 서로 의지하며 헤쳐나가고 있다.


오자매 카톡방에 남 일이란 없다.


엄마아빠의 건강안부, 반려견 사진,

아이 등교,  남편 회식,  출장,  

사돈의 팔촌 땅 산 이야기까지.


하루 평균 100 톡 이상.

끊임없는 카톡 알람으로 서로 일상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함께 나이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 오자매는

늙은 몸들이 함께 쉴 수 있는

또다른 한 방을 꿈꾸고 있다.


넓은 대지에 5층 건물을 지어,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수 있는,

꿈의 공간 "오자매타운".


비록 현실은

좀처럼 돈도 모이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육아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오늘도 "오자매 토크박스" 카톡방은

"오자매타운" 건설 이야기로 활기차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조금 불편하지만, 분명 재미있었던

우리만의 한 방 살이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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