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LA에 도착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해외에 오게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1년 동안 미국 LA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말이죠.
2022년 5월 현재 기준으로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탑승 하루 전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필요(단, 90일 이내 코로나 확진자는 예외)했기 때문에, 비행기 탑승 하루 전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손에 받아들기 전까지 불안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미국 도착한 다음날 바로 대학교 수업을 들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는데, 혹시나 코로나 양성 결과가 나와버리게 되면 10일 동안 출국하지 못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게다가 하필 코로나 검사 받기로 한 날 아침부터 목이 간질간질하고, 잔기침이 나오는 게 꼭 코로나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코로나 검사를 하러 병원에 방문했고, 잠시 대기했다가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구요.
그래, 양성 나오면 그냥 안 가고 말지 뭐. 하하하
불안이 극에 달하니 이렇게 자포자기한 심정에 가까웠졌던 것 같습니다. 잠시후 의사 선생님께서 부르셔서 방에 들어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니 음성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렇게 무사히(?) LA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탑승하려면 전날 받은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음성확인서와 코로나19 예방접종확인서가 필요합니다. 항공사 직원에게 증명서를 보여주고, 별다른 문제없이 보딩패스를 받았습니다. 한동안 못 보게 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눈물 한 번 찔끔 흘리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항상 제 옆에 있었던 와이프와 딸아이가 없으니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약 2달 정도 지나면 가족들도 미국으로 들어올 예정이긴 했지만요. 전쟁터에라도 끌려가는 기분이었달까요?
미국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정착자금이 필요할 것 같아 1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환전해 가는 상황이었기에 X-Ray 검사를 받기 전에 세관에 신고후 외국환신고 확인 필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관 직원에게 얼마 소지하고 있는지 신고하고 확인 필증을 받았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타 보는 국제선 비행기. 이제야 미국으로 떠난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여행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는 한없이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하고 무거웠던 걸까요? 출국장으로 들어오기 전에 가족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껴안아주고 올 걸 하는 아쉬운 마음만이 한가득이어서였나 봅니다.
이런 제 마음과 상관없이 비행기는 LA를 향해 날아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번째 기내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약 11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 있어야 했으니, 슬프고 무거운 마음은 뒤로 하고 일단 배를 채우기로 했습니다. 저녁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로 비행기를 탔거든요.
오랜만에 맛보는 기내식. 오랜만에 먹는 것이어서였을까요, 배가 고픈 상태여서였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입에 꾸역꾸역 넣었던 것 치고는 생각보다 맛있었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그 동안 출국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신경을 쓰느라 피곤했는지, 잠이 쏟아지더라구요. 다운받아 온 웹튼 몇 개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요.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니, 승무원 분들이 두번째 기내식 제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미국에 도착하면 당분간 밥 먹을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아 흰죽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승무원 분께서 무척이나 미안해 하시면서 죽이 다 떨어졌다며 스크램들드 에그도 괜찮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밥을 못 먹게 된 것은 조금 아쉬웠으나, 꼭 죽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상관없다 말씀드리고 스크램들드 에그를 받아 먹었습니다.
이제 미국 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후 LA 공항에 도착하는 안내 방송과 함께 착륙! 11시간의 비행 끝에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 내내 잠든 상태였기에 지루할 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신고를 하러 가니 이미 다른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구요. 약 1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입국신고를 할 수 있었고, 1만 달러 이상의 외환 반입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하니, 별도의 사무실로 안내받았습니다. 그 곳에서 간단하게 신고서 작성후 미국에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왜 1만 달러 이상 가지고 왔는지 딴지 걸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아무것도 묻지 않더라구요.
한시라도 빨리 숙소로 들어가 발 뻗고 쉬고 싶은 마음 뿐이어서 이미 도착해 있던 수하물을 챙겨들고 공항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골프 클럽을 들고 오긴 했는데, 과연 가족들과 만나기 전에 골프 칠 일이 있을지..
미리 공항에 픽업 나와주신 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짐이 워낙 많아서 택시 타고 오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숙소까지 이동을 도와주신다 해서 정말 다행이었죠.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짐 대충 풀어놓은 후 룸을 둘러보니 꽤 훌륭했습니다. 레지던스 타입이라 살림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 - 식기류, 세탁기, 건조기 등 - 이 갖춰져 있어서 앞으로 거주하게 될 집을 구하기 전까지 혼자 머물기에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짐 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가져온 너구리를 하나 끓여먹기로 했는데, 다 끓이고 나니 젓가락이 안 보이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스파게티처럼 스푼과 포크를 이용해서 먹었는데, 다 먹고 나서 여기저기 뒤졌더니 서랍 한구석에서 젓가락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걸..
비행기에서 한참을 자고 온 덕분인지, 밤이 늦었는데도 잠이 오질 않아서 따뜻한 물로 샤워나 하고 자야겠다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샤워기로 물 나오게 하는 방법을 도통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프런트에 연락해서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여기저기 막 눌러보다가 겨우 샤워기로 물 나오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고는 샤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나 여기서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이래저래 심난했던 LA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을 해결해야 할지 벌써부터 암담하기만 한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