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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Mar 08. 2022

시장통의 갤러리, 그 쿨함에 대하여

'가나아트 보광'과 얼굴 없는 회화에서 느끼는 차별성


가나아트 보광의 '이브겐 코피 코리섹' 전.  전시에 대한 느낌 전에 이 공간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이름처럼 보광동 한복판, 그것도 시장통의 옛 은행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외양만 봐선 도대체 갤러리임을 알 수 없다. '뒷고기'집과 떡집, 각종 의원 간판 사이에 있는 아무 간판없이 낡은 건물이다. 집과 가깝고 한강 가는 길에 있어 자주 지나는 시장통이지만 정말 번잡하고, 골목은 좁은 요즘도 이런데 있나 싶은 곳이었는데 여기에 갤러리가 생겼다해서 정말? 하는 심정으로 한번 와 봤다.

그런데 안은 잘 만들어졌다. 옛 은행지점답게 큰 기둥과 직각의 벽들이 큼직하게 세워진 공간을 잘 활용하고 계단과 채광창은 새로 기하학적으로 조화롭게 배치한 것 같다. 그 사이로 젊은 감각의 회화작품들이 잘 어울린다. 




이브겐 코피 코리섹은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독학한 화가라 한다. 영화와 잡지 등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인물을 그리되 얼굴은 뿌연 웃는 표정으로 흐릿하게 동일한 형상을 집어넣었다. 그러다보니 얼굴보다는 각종 명품과 소비상품으로 덮은 육체들에 집중하게 되는데 결국 어떤 의미에선 얼굴엔 가면을 쓰고 욕망을 숨기고 사는 현대인의 삶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 흐릿한 얼글은 우습기도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웃으며 몸은 있는 힘껏 가꿔야하는 모순된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슬프기도 하다. 



구찌니 에르메스니 비싼 옷과 가방을 들고 몸은 또 헬스장 가서 힘껏 빼고 근육은 키워서 바디프로필도 찍어서 올려야하는 결국 몸도 스펙이 된 삶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사실 요즘 나름 열심히 헬스장을 다니며 '깨작깨작' 운동하면서 느끼는 것도 이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헬스장도 그렇고 다른 몸을 가꾸는 이들을 가엾게 본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현대인에게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내 몸'이다. 다른 건 다른 사람들의 힘에 좌우돼 그냥 끌려다니지만 적어도 내몸은 노력하면 맘대로 가꿀 수는 있으니...다만 그것도 다른 이들에게 '뵈일 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선 역시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스펙이긴 하다. 


낡은 서민동네에 갤러리를 설치한다는 것도 무척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함도 느껴지는 결정이지만 다시 시선을 넓게 보면 상업적 결정이기도 하다. 시장 골목을 보행기 끌고 지나가는 노인들이 이 갤러리에 들어올리도 없고(간판조차 없으니 갤러리인 줄도 모를 것이다.) 보광동 지역 문화에 도움이 될리도 없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정보 얻는  MZ 세대들에겐 이런 부조화가 오히려 쿨하게 느껴질 것이다. 성수동이 힙한 곳이 된 것도 시멘트공장과 구두공장 있던 동네에 문화공간이 들어왔다는 부조화였으니...이 갤러리에 대한 기사들도 이렇게 'MZ세대를 모셔라' 류의 제목들을 달고 있으니까...


암튼 결론은 그러나 나도 MZ세대는 절대 아니지만 이 장소와 전시에서 쿨함을 느꼈으니 그걸로 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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