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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2.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1


(출국일 D-30)



집중이 안 될 줄 알았다.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나의 정신은 이상하게 자꾸만 또렷해졌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이런 날은 꼭 주인공이 아무것도 못하고 안절부절 손만 쥐고 있던데. 어째 나의 업무는 눈치 없이 평소보다 잘되는 느낌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본 적이 있다면 알 법한 마음일 것이다.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 다른 일이 잘되면, 꼭 그 중요한 결과는 서운했던 기억. 왠지 스텝이 꼬이고 다른 일이 잘 안 되어야 원했던 일이 잘 풀리리라는 ‘머피의 법칙’ 비스무리한 징크스랄까.

퇴근 시간이 가까워서야 언론사 지망생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KBS 서류 떴어요!’

차분한 마음으로 KBS 채용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당시에도 웬만한 규모의 기업들은 인프라 시스템을 통해 수험번호나 개인정보를 넣으면 본인의 채용 결과만 알려주었다. 그런데 KBS는 아직도 마치 대자보 써 붙이듯이 합격한 수험번호를 나열한 공고를 pdf 파일로 올려주는 클래식함이 있었다. 이제는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파일을 열어본다.


[시사교양 pd 서류전형 합격자]
,,,,100781,,100782,,100784,,100785,,,,,
무의식적으로 외웠던 내 수험번호가 있어야 할 줄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두 번 읽고 세 번을 읽어도 내 번호가 없다. 내 번호 앞뒤로 다 있는데, 내 번호만 없다. 내 자리만 비어있다.

......
화도 나지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 충격적이지도 않다. '이럴 것 같더라'싶은, 안 될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마음. 그저 마음에 찝찝한 안개가 흐릿하게 쌓인 것 같은 기분다.

퇴근길 기숙사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과자 몇 봉지를 보이는 대로 쥐었다. 룸메이트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빈 기숙사에 혼자 컵라면에 물을 붓고 멍하니 앉았다.



'넌 아니니까 이제 그만 지원해’
내 수험번호가 없는 kbs 서류전형 결과 발표문은 나를 이런 목소리로 외면했다.


그동안 다른 방송사 최종전형도 가보았다. 다들 한 번 넘고 싶어 하는 필기전형은 내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kbs 서류전형은 지원자의 80% 정도는 합격하는, 그리 높은 문턱도 아니다.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이 만큼 애를 썼으면,
이렇게 간절히 원해왔으면
이제는 합격을 줘야 할 때다.
그래야 꿈은 이루어진다는 세상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서류전형 탈락이라니.



안 될 일을 부여잡고 산 지 오래였기 때문일까. 나도 지쳤는지 화가 그리 나지 않았다. 이제는 지친 짝사랑을 놓아야 할 때인가... 컵라면을 다 먹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데, 네이버에 배너 광고가 보였다.



'하나투어 메가 세일!! 최저가 항공권!’



멍하게 본 광고는 진짜 저렴한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11월은 여행 비수기였다. (어마어마하게 항공권이 저렴했던 하나투어 메가세일은 지금은 프로모션이 없어진 것 같다.)



인천-파리 왕복 아시아나 직항 84만 원.




클릭을 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넣고,
결제를 눌렀다.




내 여권 번호가 뭐였더라....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지금은 하나투어에서 메가 세일이라는 프로모션은 없앤 것 같습니다. 2017년 이후로는 메가 세일 광고를 찾았지만 보지 못했네요. 당시에도 할인 항공권은 항상 있었지만, 메가 세일은 여행 비수기인 3월에 한 번, 11월에 한 번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했습니다. LA가 왕복 직항이 52만 원 대, 런던이 80만 원 대였으니까요. 당시 한인민박에서 만났던 다른 여행객들과 비교해도 제가 제일 싼 비행기로 1등이었습니다. 자부심 뿜뿜.



2. 최근에 엄마와 갈 생각으로 다시 프랑스 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에어프랑스 인천-파리 직항이 89만 원이라 에어프랑스 공식 홈에서 구매했었어요. 1회 경유 기준으로 베트남 항공이 64만 원 대 였던 걸 보면 상당히 괜찮은 딜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가 해결되어야 성사될 수 있는 딜이겠죠. 구매했던 89만 원짜리 직항 편은 코로나로 프랑스 입국 금지가 걸리면서 전액 환불받았습니다. 눙물 유유
그 시절 하나투어 메가세일의 광고. 대방출이라는 말에 걸맞는 항공권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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