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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Mar 13. 2023

실제 대행사 사람이 본 드라마 <대행사>

JTBC 드라마 <대행사>가 종방됐다.

주변에서 실제 광고대행사 일과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기에 글로 옮겨본다.

종방되기 전에 글을 쓰려 그랬는데, 요즘 난 게으름이 좋다.


1. "드라마 수준으로 야근하지 않는다"

      밥먹듯이 야근하는 동지들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적어도 난 그렇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집에 거의 안 가는 느낌이다. 집은 거의 침대나 샤워실 정도로 쓰는 느낌?

      물론 경쟁PT를 하게 되면 업무 강도가 올라가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드라마처럼 회사에 죽쳐야 된다면 난 당장 이 일을 그만둘 것이다.

      인간의 생산성을 생각해 보라. 논리와 아이디어가 회사에 머무는 시간만큼 나오는 건 절대 아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처음에 냈던 아이디어가 돌이켜보면 가장 탁월했을 때가 꽤 자주 있다.


2. "기획과 제작은 따로 일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는 기획본부장과 제작본부장이 원수지간이며, 양 조직 간에 경쟁구도 일변도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두 조직은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기획조직의 방향성과 제작조직의 제작물이 한데 어우러져서 나오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연유로 기획과 제작을 대칭으로 놓게 됐는지 궁금하다.

      드라마 주인공이 제작본부장인데, 갈등구조의 편의를 위해 다른 일을 하는 기획본부장을

      그 반대선상에 놓은 것 같아 보인다.


3. "드라마 같은 솔루션은 적어도 광고에서는 없다"

      다음은 드라마의 상황.

      재벌 회장이 구속수사 중인 상태에서, 해당 기업의 경쟁PT 건이 나온다.

      그런데 경쟁PT OT를 받으러 갔더니 클라이언트가 준비한 게 없다. 알아서 답을 찾아내라는 거다.

      기존의 문법으로는 이기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답이 쉽게 안 나온다.

      그 때,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 CD(Creative Director, 제작팀장)가 "억울한" 심정을 노트북에 갈긴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탄생한 솔루션, "법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법의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재벌 회장 또한 법의 불완전한 잣대로 인해 구속되어 있을 수 있다는 의도를 전한다.

      드라마틱하긴 한데 실제로 이렇게 광고하면 그 기업은 제대로 역풍 맞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재벌은, 법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혜택을 입으면 입었지

      불이익을 받아 온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주인공 선배의 얘기처럼, 무광고가 최고의 광고인 것 같다.

      눈 내리는데 치워봐야 계속 눈만 쌓인다.


4. "클라이언트의 우유를 사내에 납품하겠단 약속이 잘못은 아니다"

      우유 클라이언트 경쟁PT 자리. 기획본부장이 꾸린 조직의 아이디어가 경쟁팀보다 별로다.

      그런데 우유를 전 계열사에 납품하겠다는 약속으로 전세를 뒤집어 PT를 따낸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방송국에 알린 신임 제작본부장이자 동기의 양심선언으로 문제가 커진다.

      실제 세계에서는 이게 문제일까. 아니다. 우유 납품에 대한 약속은 영업 측면의 제안으로

      회사에서 그럴 자원이 있다면 활용해 마지 않아야 한다. 전략의 본질은 상대방이 갖고 있지 않은

      무기로 싸우는 것이니까. 실제로 이런 영업 측면의 약속을 통해 PT에서 승리하는 경우들이

      왕왕 있는 것으로 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아이디어의 차별화가 대행사별로 두드러지지 않다면

      이러한 부가적인 제안으로 영업에 도움을 주는 대행사를 고를 것이다.

      물론 계열사 없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승부해야 되는 독립대행사 입장에서는 속상할 노릇이다.

      

5. "독립대행사는 정말 힘들다"

      주인공의 선배는 독립대행사의 대표이다. 독립대행사는 대기업 계열의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아닌,

      말그대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광고 에이전시를 의미한다.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자 극단적인 선택까지

      염두에 두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독립대행사로 살아남기 힘든 것 같다.

      주요 대기업들의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계열사 물량을 흡수하며, 이렇게 키운 덩치로 독립대행사와의

      경쟁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했던, 아이디어가 아닌 것들로 인하우스 에이전시에게 밀리는 상황까지 맞이하면

      그야말로 멘탈 잡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광고의 미래가 밝아 보이는 이유가 있다.

      끊임없이 새롭고 참신한 대행사들이 발굴되며, 자기만의 비전으로 이러한 대행사들을 선호하는

      젊은 친구들 또한 계속 공급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광고산업 지형에 순응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가는 독립대행사 광고인들에게 진심어린 리스펙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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