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어렵다. "이니셰린"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외딴 섬. "밴시"는 귀신이다. 그러니까, 이니셰린 섬에 귀신이 사는 거다. 그렇다고 무슨 공포 영화는 아니다. 그냥 보이지 않는 적이 사는 거다. 우리 인간 관계 그 사이에.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어서 관계를 어지럽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미묘한 지점을 잘 포착해 관객에게 내놓는다.
주인공은 시간이 많다. 일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가축을 돌보는 것 같다. 그거 외에는 시간이 남아돈다. 이 주인공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인물이 바로 "콜름"이라는 어르신이다. 짐작컨데, 둘이 노가리를 자주 깠던 것 같다. 그런데 "콜름"의 모드가 어느날 갑자기 변한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의미없게 보내지 않겠다고. 영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콜름"이 주인공에게 얘기한다. 너는 너무 지루하다. 동물 똥 치우는 것 같은 쓸데없는 얘기에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 의미있게 살겠다. 너랑 대화를 끊겠다. 네가 다시 말을 건다면 손가락을 자르겠다.
주인공은 어이가 없다. 어제까지 나랑 잘 놀았던 양반이 왜 저러지. 그러면서 "콜름"이 그은 대화 단절의 선을 쉽사리 넘는다. 화를 내고, 도발한다. 이해가 안 되니까. 그런데 "콜름", 진짜로 손가락을 잘라 주인공의 집 문에 던진다. 이 행위 자체가 주는 울림이 있다. 싫은 건 싫은거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정작 상대방이 계속 매달리는 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닐까. 실제로 영화에선 주인공이 "콜름" 때문에 괴로워하기 보다는, "콜름"에게 외면당한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싫다. 그게 "콜름"을 계속 설득하고 자극하는 주된 이유다. 인간의 이기심과 위선. 나쁘다기 보다는 인간이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직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잘 되라고 뭐라 하는데,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개입해 본 적 몇번인가? 상대방은 정작 괜찮다는데도 내가 안 괜찮아서, 아니면 다른 정치적인 이유로 개입한 건 아닌가? 실은 상대방을 위한 도덕이 아니라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 싫었던 게지. 그래서 상대방이 잘 받아주지 않으면 미안하다기 보다는 그저 원망스럽고 화가 난다. 그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파트가 영화에 있다. "콜름"이 자른 손가락이 애석하게도 주인공의 안 좋은 일로 이어진다. 의도한 결과는 아니겠으나, 주인공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이 비극을 초래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대화의 단절을 계속 거부한 이가 누군지를.
타인의 싫음을 존중해야 한다. 그 싫음이 싫더라도 말이다. 그건, 사람에 대한 무시와 멸시라기 보다는 내 안의 평화를 찾기 위한 작은 용기이다. 인간됨의 진전이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관계 때문에 힘든 사람들은 관계를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이 영화는 그 용기를 자극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아닌, 오롯한 내 인생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