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미국
작년에 미국에서 본 아카데미상 시상식 얘기를 하고 싶다.
윌 스미스가 크리스 락의 뺨을 라이브로 때렸을 때 충격 받았는데,
한국과 미국의 인식 차이가 더 큰 충격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뺨을 때린 윌 스미스를 욕했다.
어디까지나 미국식 코미디의 영역으로 간주해야 할 구간이었는데
그 룰을 깨고 폭력을 행사한 윌 스미스가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리스 락을 욕했다.
아무리 코미디라도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남의 부인을 욕되게 하는 패륜개그를 했으니 맞아도 싸다는 식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미국에서 한국의 기사들을 보니 유독 "인성"이라는 단어가 잘 보였다.
야구 하이라이트를 봐도 데드볼을 맞히고 90도로 인사하는 투수의
"인성 갑" 비디오 클립은 조회수 1등의 인기 소재였다.
"인성"에 대한 열광 속에서 실은 타인에 대한 불편함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태도와 인격만큼 다른 사람 또한 그래야 된다는 것 같은?
그래서 인성이 안 좋다고 판단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왜? 나도 나이스 한 게 힘들 때가 있는데 좋게 타인을 대하고 있으니
너도 그래야 된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런 면모가 우리의 에너지이자 굴레이다.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전체의 힘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도 되지만
반대로 서로가 서로를 속박하며 쉽사리 튀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도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리스 락을 비판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형태로든 가족을 개그의 소재로 사용하는 건 우리가 만들어 놓은
공동의 질서가 파괴되는 느낌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좋은 계기가 된다.
모두 함께 패륜개그에 포화를 작렬하며 공동의 질서를 공고화 할.
우리가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그 사람의 실력만큼
그 사람의 "인성"을 언급하는 게 그런 의식의 발로 같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크리스 락이 코미디를 잘 짜서 좋아하지,
크리스 락이 인사를 잘 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두 사람이 한국에 있었으면 처지가 뒤바뀌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인성" 앞에 장사 없다.
"정"내지는 "조언" 이란 형태로 상대방에게 나타내기도 하고.
이게 힘든 한국 사람들은 그 질척임을 떠나기도 하며,
이게 좋은 외국 사람들은 반대로 한국에 눌러 앉기도 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