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미국
뉴욕에 오면 화장실 생각이 가장 먼저 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화장실을 못 찾아 큰 일 날 뻔 한 적 있기 때문이다.
맨해튼 Macy's 백화점 지하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장난감가게 점원이 은인이었다.
여기는 왜 이렇게 화장실이 없을까. 반대로 우리나라는 화장실이 왜 이렇게 많을까.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의 문제인가?
화장실에서 나쁜 짓을 하거나 화장실을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우리의 굳건한 믿음과 뉴욕의 불신의 차이 같은.
아니면 매운 음식의 문제인가?
음식의 자극성으로 화장실이 급하게 필요한 순간이 많은
우리와 그렇지 않은 뉴욕의 차이 같은.
아니면 우리보다 잘 참는 건가?
그런데 뉴욕은 잘 참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전세계인의 도시 아니던가.
이유를 떠나 화장실의 분포를 따져보면
결국 공공장소에 있는 화장실 유무의 차이 같다.
우리는 지하철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공장소에 좋은 설비의 공공화장실이 있는데
여기는 그런 것 따위는 사치다. 세금도 그렇게 많이 걷으면서 말이다.
결국,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보다
화장실을 안 만들어 문제를 안 만드는 단순하며 원초적인 방식을 택했다.
뉴욕은 화장실과 관련해서는 인간의 성악설에 기반하는 것과 다름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에겐 서울이 더 개방적인 곳으로 인식되며
뉴욕은 다소 닫힌 공간으로 인식된다.
공공장소 뿐 아니라 일반 상점에서도 화장실 찾기 쉽지 않으니까.
뉴욕이라는 거대하며 드높은 공간이
위대한 느낌보다는 위압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실은, 뉴욕 가기가 무섭다.
화장실이 어디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보이는 광경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다.
그럴 때면 한국이 그립다. 우리는 화장실과 관련해 인간의 성선설을 택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먹고 사는 도시는 그 도시에 머무른 사람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그 토대 위에서 우리는
공공질서도 잘 지키고
팬데믹 때 마스크도 잘 쓰고
주변 사람도 배려하며 도시의 믿음에 보답한다.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