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미국
미국 스타벅스에 있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뭔가 덜 시킨 것 같다.
나를 오랫동안 줄 서게 만든 사람들은 뭔가를 계속 얘기하며 음료를 커스터마이즈
하는 것 같은데, 내 주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로 너무 초라하다.
내가 기다린 값, 돈 낸 값 두둑히 보상받을 수 있는 복잡한 주문을 하고 싶은데.
우리는 "그렇게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건 긴 줄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주문들을 하는 느낌이다. 빠르게 심플하게.
뒷사람이 기다림에 한숨을 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속도에 최적화된 주문을 읊어댄다.
미국 사람들은 긴 줄이 당연한 사회적 합의 같다.
스타벅스에 오는 이유 자체가 음료를 "커스터마이즈" 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람들로 긴 줄을 이뤄도
그건 누구나 합의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술을 시킬 때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날 시키는 게 소주랑 맥주였던 나에게 쭉 늘어선 각양각색의 술병은 공포다.
다른 것 시킨다고 기껏 생각난 게 "잭콕", "진앤토닉" 같은 말 뿐이다.
할리우드 영화 볼 때 술 시키는 장면 많이 본 것 같은데 기억해 둘 걸.
커피도 술도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는 문화, 미국이다.
스타벅스는 이런 취향존중의 문화를 상징하는 곳 같다.
난 그냥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이미지, 느낌이 좋아서
찾는 건데 미국에서는 이런 각양각색의 주문 수요를 잘 충족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성공한 것 아닐까.
나의 주문은 그래도 과거보다는 많이 진일보했다.
바닐라 시럽을 추가해 달라고 하거나, 공짜인 얼음물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오래 기다린 값까지 챙겨 먹으려면 아직 멀었다.
속도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국 문화에서 오래 살다 보니
우리는 내 취향을 발전시킬 시간, 타인에게 존중받을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으며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