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K Sep 02. 2024

몸값

미국에 오기 전, 처음 시작한 직장에서 약 14년을 근무했다. 나름 열심히했고, 광고가 재밌었고,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보니 남는 건 마지막 체결한 연봉계약서였다. 정확한 숫자는 얘기할 수 없지만, 지인이 말하길 보통의 금융회사 1년차가 받는 돈과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서야 새삼스레 고백한다. 나는 바보다.


나는 왜 바보냐면, 마음 속에서는 원하는데 원하지 않은 척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나 대학원 동기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돈을 받는 것에 속상해 하면서도, 돈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 말하며 애써 나를 외면했다. 팀장이 정말 하고 싶었었는데, 막상 어필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다른 친구들을 먼저 팀장 시켜주라며 담담한 척 했다. 연봉 협상 때 실망스러운 숫자에 반항하기 보다는, 본부장 말을 잘 듣는 "조직의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뒤돌아보니 나는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우 불만은 있는데 얘기도 안하고, 불만을 제거하는 노력도 안 하는 사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회사에 붙어있는 채로 차곡차곡 불만을 쌓아왔으며, 겉으로는 행복한 척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쌓인 불만의 결과가 바로 그 마지막 연봉계약서였다.


물론 돈이 다는 아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다. 노력의 결실을 얻게 됐다. 광고를 알게 됐다. 그런데 그러면 뭐하냐. 한국에서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그 마성의 숫자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연봉만큼 명료한 척도가 어디있겠나. 누군가는 나의 연봉을 보며 능력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을까. 회사에 대한 애정을 담아, 한 눈 팔지 않고, 여기에 아름다운 양보의 미덕까지 한 스푼 추가하다 보면? 나처럼 된다. 


그런 나를 나는 증오한다. 회사를 다닐 때 속시원하게 얘기를 해 보든가. 그게 안 통하면, 영리하게 이직을 하면서 동기들이 가 있는 높은 자리에 나란히 함께 하든가. 이도저도 아닌 채로 열심히 살았다. 그게 나다. 몸값을 보면 적나라하게 보인다. 연봉을 애써 마음속에서 지우려고 하니 퇴직금이 가슴을 후벼판다. 나름 대기업에 14년 근속인데. 1억은 언감생심인 퇴직금을 보면 소주가 그립다. 몸값은 곧 내가 살아온 삶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두려움은 나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