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자원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다할 천연자원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고, 땅도 광활하지 않은 이 나라는 오로지 사람의 노력으로 지금의 세계적 수준까지 왔다. 사람의 노력이란, 그들이 그침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생산, 오로지 생산에 매달렸던 시간의 힘과도 같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3당4락이라는 말도 있었다. 4시간을 자면 대학을 떨어지고, 3시간을 자면 대학에 붙는단다.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비밀 중 하나는 밤을 새기를 부지기수로 했다는 것이었다.
위험한 지점은, 이것이 마치 성공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때이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잘 살고 있다가도, 이렇게 미친듯이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보고나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죄책감 내지는 패배감을 갖게 된다. 열심히 사는 내 방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이는 사회를 전반적인 패배주의로 몰고가는 방식이다. 서로 생긴 게 다르고, 옷 입는 스타일이 다르듯 "열심히"의 스타일 또한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 "시간"이란 잣대 하나로 모든 게 평가된다면 그 안에서 다양성은 없다.
그래서 부탁인데. 제발 좀, 많이 안 자는 게 마치 성공의 공식인 것처럼 얘기하는 문화나, 이를 마치 엄청난 스토리인 것 마냥 포장하는 미디어나 자제를 좀 했으면 좋겠다. 이러다 진짜 다 죽는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남들과 비교하게 만들면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프레임이 된다. 오죽하면 한강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하겠는가. 시간을 최대한 많이 써야 하는 문화 속에서, 잠깐의 짬이나서 직장동료에게 캐주얼한 채팅을 던지면 금세 할 일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시간을 비워두면 패배자 취급을 받기에 뭐라도 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위적으로라도 멍을 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시간을 가만두지 않는 대한민국의 정서에 대한 반작용이다.
산소가 희박하다. 숨쉴틈이 없다. 지금의 우리가 그렇다.캠퍼스의 낭만 같은, 이상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적은 수로 태어난다. 누군가는 사람을 탓한다. 젊은 세대는 삶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젊은 세대는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없다. 이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다. 시선이 문제다. 눈 앞의 시간이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고, 맹렬히 먹어치우는 죽음의 질주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채 끝내 마지막 숨이 되어 사라졌다. 젊은 부부들은 이 잔혹한 프레임 안에서 서로를 붙잡고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최선을 다한다. 아이를 낳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래. 우리의 유일한 자원 경쟁력은 "시간"이었고, 그 "시간"을 경이롭게 사용하여 지금의 영광을 만들었다. 그 영광 뒤의 그림자는 일정 부분 감수하더라도, 그 그림자가 사람을 집어삼키는 어둠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저마다 소중한 생명들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데 왜 불행해져야 하는가. 이제부터는 "시간"이 아니라 "콘텐츠"로 말하기로 하자. 몇 시간을 성공의 기준으로 얘기하는 문화는 저 뒤안길로 보내고, 무엇을 했는지, 또는 무엇을 할 계획인지 얘기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