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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Mar 27. 2023

그렇다면 간식 드려야지.


   튀르키예 사람들은 고양이를 위해 길거리 곳곳에 사료를 수북이 쌓아놓고(고양이가 먹다 남긴 사료는 갈매기와 동네 개들의 차지다.) 하루 지난 물통의 물을 비우고 다시 깨끗한 물을 채운다. 고양이는 스타벅스의 푹신한 의자에서 낮잠을 자고, 식당 테이블 위에서 애교를 받아줄 사람들을 기다린다. 스타벅스나 식당, 술집의 남은 한 자리를 길 고양이가 차지하고 있더라도 누구 하나 고양이를 쫓지 않고 스스로 자리를 내어주기를 기다린다. 튀르키예 고양이에게 사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튀르키예는 고양이에게 천국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튀르키예 고양이는 지나는 낯선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손을 내밀면 머리를 들이밀고 꼬리를 세우고 등을 굽힌다. 간식을 건네면 다리 사이를 오가며 몸을 비빈다. 카메라를 꺼내면 도도한 모델 자세를 취하고, 또 보자며 작별 인사를 하면 아쉬울 것 없다는 듯 차갑게 고개를 돌린다. 튀르키예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단연 고양이가 첫 번째이다. 튀르키예에서의 산책길은 늘 고양이로 시작해서 고양이로 끝났다. 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옷에 털을 잔뜩 묻혔고 산책길은 만나는 고양이 수만큼 길게 늘어졌다. 튀르키예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천국이다.




   아드리아해 위로 내려앉은 하늘이 따스하고 나른하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산책길, 오래된 건물들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내내 흥이 났던 건 로마시대에 지어졌다는 디오클로티아누스 궁전이나 꽃보다 누나에서 이승기가 고른 숙소, 테라스 위 시계탑 때문이 아니었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선물처럼 모습을 보이던 고양이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반갑다며 꼬리로 물음표를 만들고 다리 사이를 오가며 몸을 비비는데 그깟 로마, 그깟 이승기.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고양이.


   일단 고양이 간식부터 사야 했다. 마트에 들러 여러 번에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리고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밀봉이 되어 있는 간식을 골랐다. 마트 한쪽에 진열된 팔뚝만한 빵, 하나 사면 아내와 둘이서 3일 동안 아침마다 먹을 수 있는 바게트보다 비쌌지만, 가격은 이미 중요한 게 아니다. 고양이가 이 간식을 잘 먹어 주기만 한다면 가격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다.


   정작 간식을 사 들고 나와서는 한동안 고양이를 볼 수 없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간식의 첫 번째 주인을 만났다. 윤기 나는 검은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 인사도 하고 손짓을 해도 내내 모른 척하더니만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고 나서야 내게 관심을 보였다. 간식 한 개를 꺼내 눈앞에 놓아 주니 한 입에 먹어 치우고는 맛이 괜찮았는지 내쪽으로 한 발 다가왔다. 그렇다면 하나 더 드려야지.  

어찌, 준비한 간식이 마음에 드시나요.


   산책을 나서며 챙기는 짐은 늘 같다. 아내는 현지 화폐인 유로가 들어있는 지갑과(돈 관리를 아내가 한다.) 아드리아 해의 따스한 햇볕을 굳이 막는 선글라스, 아드리아 해의 나른한 햇볕을 굳이 막는 선크림을 가방에 넣는다. 내가 챙기는 건 생존에 필요한 것들, 우리가 지금 어느 골목길을 걷고 있는지 알려주는 구글맵, 갑작스레 떨어지는 당을 보충해 줄 초콜릿이 발라진 비스킷, 500ml 물이 담긴 페트병 같은 것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고양이의 환심을 얻어낼 수 있는 간식.


   산책길은 매일 다르다. 하루는 구글맵이 알려주는 관광 명소를 따라다니고, 다른 하루는 크로아티아의 국기가 펄럭이는 산 정상에 홀려 경사 심한 오르막을 굳이 오른다.(산 정상, 여행객은 우리 뿐이다.) 아내는 때마다 선크림을 덧대 바르고 나는 만나는 고양이마다 간식을 건넨다. 햇볕을 뿌리치고 고양이의 환심을 얻으며 4박 5일간의 크로아티아의 일정을 채운다.




   크로아티아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넘어와 맞이한 첫 아침, 창으로 들이치는 아침 볕을 즐기는데 길 건너에 나른하게 앉아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출근길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따위 고양이답게 거들떠도 안보며 자신의 느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이 숙소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고양이를 볼 수 있다. 숙소의 만족도가 한층 올라갔다.


   아침 산책을 나오며 보니 고양이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간식 드려야지. 가방에서 간식을 하나 꺼내 고양이 앞에 내민다. 간식에 보답하듯 냐~ 한번 울어 준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도 고양이는 여전히 그 자리다. 그렇다면 간식 드려야지. 가방을 열기만 해도 고양이가 눈치채고는 먼저 냐~ 한다.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는 오후 산책길, 고양이가 이제는 나를 알아본다. 길 건너에 있는 나를 보고 자기가 먼저 냐~. 그래, 그렇다면 간식 드려야지.


   아침마다 창 앞에서 눈곱을 떼며 길 건너 고양이를 찾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늘 앉아있는 곳, 계단 옆 돌기둥이나 소화전 위. 오늘도 있다. 시선은 고양이에게 둔 채로 반가운 소식을 아내에게 전한다.

   ‘출근했어.’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건지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을 담아 아내에게 말한다.

   ‘이제 퇴근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나를 기다리는 건가.


   아침 산책을 나오면서 간식 하나, 냐~.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면서 또 하나, 냐~. 낮 산책을 나오면서 간식 하나, 냐~. 해질 무렵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면서 또 하나, 냐~. 이미 퇴근해서 마주치지 못하면 못 주고.


   일정의 마지막 날, 내게 먼저 냐~ 하는 고양이를 두고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 간식은 누가 주나. 더는 내가 없다는 걸 모르고 매일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면 어쩌나.

   ‘매일 저기서 나 기다리는 거 아냐? 그럼 어떡하지?’

   혼자 감상에 젖어있는 나를 아내가 깨운다.  

   ‘고양이잖아. 그럴 리 없어.‘

   아내의 말이 맞다. 고양이다. 고양이는 가는 사람 절대 붙잡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남은 간식을 전부 털어주고는 불룩한 캐리어와 짊어진 배낭을 고양이 눈앞에 들이밀었다. 나 이제 가는 거야. 기다리지 마. 기다려도 소용없어. 고양이니까 알아 들었겠지. 이제 떠난다는데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건 눈앞에 수북한 간식 때문이겠지.

쓰담쓰담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튀르키예에서는 고양이를 케디 kedi 라고 말한다. 케디라니. 어쩜 그렇게 이름마저 고양이스러운지. 케디 뜻이 뭐게? 하고 누군가 물었더라면 혹시 고양이? 왠지 고양이! 무조건 고양이!! 라고 했을 것만 같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마츠카 mačka 라고 부른다.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도 마츠카 mačka. 입으로 한번 중얼거리면 마츠카~ 발음 뒤로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들썩인다. 고양이를 입으로 부르는 건 케디나 마츠카라고 소리 낸 다음 입꼬리를 올려야 제대로이다. 그렇다고 외울 필요는 없다. 고양이를 부르고 나면 누구나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갈 테니까.


   태국에서는 고양이를 매우 แมว 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네코 ねこ 라 한다. 태국에서는 매우에게 매일 간식을 사다 바쳤고, 일본에서는 네코를 만날 때마다 눈을 떼지 못했다. 늘 그랬다. 매우든, 네코든, 케디든, 마츠카든, 그리고 고양이든.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손을 내밀고, 홀린 듯 주섬주섬 간식을 꺼냈다. 앞으로 가게 될 세르비아에서는 고양이를 뭐라고 부를까? 오스트리아에서는? 이탈리아에서는?


   내가 지금 들떠 보인다고? 맞다. 나 지금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무척 신이 나있다.





이번 매거진은 idle​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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