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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Apr 14. 2023

무기는 금지입니다.

   세르비아에서도 고양이는 마츠카 мачка 였다. 로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던 크로아티아에서도, 투명한 봄날 하늘이 너무나 부러웠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도 고양이를 마츠카 mačka 라고 불렀다. 국경을 두 번이나 넘었는데도 고양이는 여전히 마츠카였다.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이 키가 크고, 똑같이 눈동자가 파랗고, 똑같이 체바피를 먹고 똑같이 고양이를 마츠카라고 부른다. 생김새가 같고 먹는 것이 같고 서로의 언어가 같은, 동일한 핏줄의 민족이다. 그러니까 1990년대,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참혹했다는 보스니아 전쟁은 같은 남슬라브 민족끼리 벌인 전쟁이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달랐던 단 한 가지는 종교였다.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집단 학살의 원동력은 그들의 달랐던 단 한 가지, 바로 종교였다.


무기는 금지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발칸반도 지역을 아우르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범슬라브 민족주의의 파도를 등에 업은 세르비아 주도의 국가였다. 세르비아의 주도 아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등이 범슬라브의 이름으로 연방에 속했다. 1989년 동유럽 혁명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뒤흔들었고, 1991년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분리 독립의 바람이 불 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을 믿었다. 그러니까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는 같은 민족, 같은 종교의 국가였다는 이야기이다. 분리 독립의 과정에 걸림돌이 없었다. 하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달랐다. 이슬람(보슈냐크계), 가톨릭(크로아티아계), 정교회(세르비아계) 신자들이 한 지역 내에서 뒤섞여 있었다.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에 찬성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서의 독립이란 곧 세르비아의 영향력 아래에서의 독립을 의미했는데, 그런 이유로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에 반대했다.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분리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세르비아계가 보이콧한 가운데 독립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이를 근거로 보슈냐크계와 크로아티아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을 선포하며 유고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유고 연방의 주도국 세르비아의 물밑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독립에 대한 찬반으로 시작된 전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를 기반으로 편이 나뉘어 서로를 학살하는 전쟁으로 변해갔다. 학살에는 노인과 여성이 포함되었으며, 아이들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보스니아 전쟁에서 벌어진 인종 청소의 참상 중 90%는 정교회의 세르비아계에 의해 자행되었고 희생자의 약 80%가 이슬람의 보슈냐크계라고 한다. 종교적 배타성을 연료로 한 전쟁 범죄와 집단 학살은 1995년까지 이어졌다.




   전쟁의 한복판이었던 사라예보의 건물 외벽에는 당시의 총격으로 파인 흔적을 흔하게 볼 수 있고 길바닥에는 여전히 포격의 흔적이 남아있다. 총알이 박힌 건물의 서글픔은 벽화로 가렸고 포탄이 떨어진 길바닥에는 장미를 그려 넣었다.


아름다워서 더 안타까운 전쟁의 흔적.


사라예보 길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무기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을 볼 수 있다. 무기를 가진 자가 경고문을 보고 순진하게 발길을 돌리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곳곳에 무기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을 붙여 놓는 건 다시는 잔혹한 전쟁을 겪지 않겠다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람들의 의지가 아닌가 싶다.  


그리니까 무기는 절대 금지입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수도인 사라예보를 떠나는 마지막 날, 우리는 남슬라브 민족 영혼의 음식이라는 체바피를 먹었다. 물론 식당에 무기는 가지고 가지 않았다. 식당에는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보슈냐크계를 생김새로는 구별할 수 없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앉아 체바피를 먹고 있었다. 식당 앞으로 고양이라도 한 마리 지나갔다면 동시에 같은 언어로 어! 마츠카! 하고 외치지 않았을까.


   처절했던 전쟁이 끝나고 30년이 지난 지금, 사라예보는 평화롭다. 이슬람 사원의 아잔소리가 사라예보의 골목길에 퍼지면 정교회 성당의 종소리가 뒤를 이어 화답한다. 사라예보에서 종교는 이제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한다. 오후 내 햇볕을 받아 따스해진 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누운 마츠카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나른하게 즐긴다.




이번 매거진은 idle​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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