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랑의 책읽기 Sep 09. 2020

마르크스와 주류경제학 모두를 의심하기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책 표지에 자신한 대로, 정말 쉬운 자본론 강의였다. 덕분에 자본론의 핵심 개념들을 다시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를 부담없이 입문하고 싶다면 단연 추천. 


여기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대신, 경제학 이론 전반에 대한 평소 내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이기도 하다.









모형은 현실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를 원할 때 ‘모형’을 도입한다.  ‘모형’이란 복잡한 세상을 알기 쉽게 단순화한 형태를 말한다. 우리가 출퇴근때마다 보는 지도는 실제 지형의 ‘모형’이다. 지도는 실제 지형이 아니지만, 대신 길과 건물을 찾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모형은 사람들이 복잡한 현실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판단을 내리기 쉽게 도와준다. 


하지만 모형은 현실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노선도라는 ‘모형’을 보고 “사당역에서 삼성역까지 일곱 정거장을 가면 된다”라는 결론을 내는 건 타당하지만, 만약 “각 역 사이의 거리가 전부 일정하다”라는 결론을 낸다면 그건 모형을 현실로 착각한 것이다.


[자본론]이 그리는 자본주의 세계는 하나의 뛰어난 모형이다. 주류경제학의 완전경쟁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두 모형 모두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독특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리고 당연히, 어느 모형도 자본주의 시장 그대로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이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모형을 현실이라고 착각한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시장이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스템이라고 굳게 믿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존재’로서만 인식한다.


공교롭게도 [자본론]과 수요-공급이론은 시장자본주의의 거의 정반대 면을 강조한 후 단순화시키는 모형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는데, 이를 반대로 뒤집으면 주류경제학 비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반대의 모형을 ‘불변하는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실제 노동시장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과 완전경쟁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노동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잉여가치론’은 [자본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는 공장을 짓고, 원재료를 구입한 다음 노동자의 ‘시간’을 이용해서 상품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에 투여한 노동시간만큼의 교환가치를 지급하지 않는다. 대신 노동자는 그의 ‘노동력’-즉 노동할 수 있는 생명-을 유지하는 대가만을 임금으로 지급받는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노동, 잉여노동으로 얻어진 잉여가치Surplus를 통해서만 자본가는 이윤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착취가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다.


주류경제학의 수요-공급 모델은 노동시장에 대해 [자본론]과 거의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는다. 수요-공급 모델에 의하면, 임금은 노동시장의 수요측 (자본가) 와 공급측 (노동자) 서로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임금이 올라가면 자본가는 노동의 수요를 줄이고, 임금이 내려가면 노동자는 노동공급을 줄인다. 양측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며, 그 결과로 노동이라는 상품을 교환한다.


도대체 어느 모델이 “맞는” 모델인가? 정답: 모든 모델은 틀리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모델은 현실이 아니다. 특히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 모델은 ‘우화’의 수준으로 현실을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하나의 모델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모델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랬다면 모델을 만들 필요가 없다. ‘좋은’ 모델은 현상을 상당히 근접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직관적으로 단순화한다. 하지만, 하나의 모델이 내놓은 결과는 결국 데이타로 검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공장에서 잉여가치가 나오고, 그 잉여가치가 1억원이라고 하자. [자본론]의 모델에 의하면 자본가는 잉여가치 1억원을 전부 가져가서 회사의 이윤으로 만든다. 수요-공급 이론에 의하면 (수요측과 공급측의 탄력성이 같을 때) 자본가와 노동자는 잉여가치를 5천만원씩 나누어 갖는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가? 데이터를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데이터는 대부분 모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최근 20년간 선진국에서 GDP 대비 임금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는 데이터를 보면, 마르크스의 ‘예언’이 현실로 들어맞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좀 더 복잡해진다. 기술발전으로 노동자 사이에서도 ‘전문직’과 ‘단순노동직’사이에 양극화가 발생하고, 단순히 노동자의 협상력을 늘리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않는다. 이런 데이터들의 미세한 결들을 무시하고 단순히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있다”거나 혹은 “노동자와 자본가는 동등하게 경쟁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편향되지 않은 뛰어난 전문가들이 많아져야 한다.


[자본론]은 뛰어난 모형을 기본으로 통찰력있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자본론]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모델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자본론]이 (그리고 정반대의 모델인 주류경제학이) 제시하는 가설들을 데이터로 혹독하게 검증해야 한다. 


복잡한 데이터를 읽고 편가름없이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져야 하고, 또 그들의 말을 가감없이 전달할 수 있는 (유시민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지식소매상’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한국의 전문가집단 (학계)와 지식소매상 (언론계)의 역량은 많이 아쉬운 수준이다. 반지성주의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좋은 지성이 많이 나타나는 것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정치가 필요없는 자유주의 세계가 환상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