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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Sep 14. 2020

성공에 얼마나 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Success and Luck], Robert Frank

(한국어판 제목은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얼마 전에 코넬에서 은퇴한 로버트 프랭크의 2016년 작. 성공과 운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꾸준히 생각해오던 주제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집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공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프랭크의 통찰력있는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될 듯.



사람들은 항상 지나간 사건들을 ‘필연적’으로 둔갑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 사람이 성공하는 데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이 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든 한국 성인은 자기의 학력고사-수능 점수가 평소 실력보다 높았는지, 낮았는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종료 1분을 남겨놓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찍었던 문제가 맞아서 점수가 2점 오르고, 그 때문에 갈 수 있는 대학교가 바뀌었다면 이는 자기의 실력일까, 노력일까, 아니면 운일까? 


내 수능점수는 고등학교 내내 봤던 어느 모의고사 점수보다 높았다. 이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나한테 “너가 진짜 중요할 때 빛을 발하는 실전체질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내가 봤던 중요한 시험들에서 딱히 평소보다 더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수능점수가 높았던 ‘우연한 현상’을 너무 쉽게 합리화했던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일을 놓고 스토리를 만들어 ‘필연적인 사건’으로 둔갑시키는 인간의 성향을 심리학에서는 “hindsight bias”라고 부른다. (p.21)


> Extending Lazarsfeld’s work, the sociologist Duncan Watts has argued that hindsight bias operates with particular force when people observe unusually successful outcomes. The problem, he suggested, is that it’s almost always easy to create a narrative after the fact that portrays such outcomes as having been inevitable. (p.22)



운은 기회를 만들어내고, 그 기회는 더 큰 운을 불러온다.


운의 영향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특히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 번 운이 좋은 놈은 계속해서 운이 좋은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생각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일정 부분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성공적인 커리어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주어지면서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중요한 작업을 잘 수행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더 큰 책임이 주어지는 다음 기회가 찾아온다. 운이 더 큰 운을 몰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유능함을 가지고 똑같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첫 번째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PD가 되기 위해 방송사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으나 탈락하고 공무원이 된 내 친구. 약혼녀와 파혼한 충격으로 유학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던 후배. 수능점수가 잘 안 나와서 원하던 학교에 가지 못하고, 따라서 바라던 커리어에 필요한 좋은 네트워크를 가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목표에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가 정말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서만일까? 만약 내 친구가 자리가 하나 더 생겨서 방송사 최종면접에 붙었다면, 그는 남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을 발휘하며 최고의 PD가 되었을 수도 있다. 우주 어딘가에는 그러한 평행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21세기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히는 [브레이킹 배드] 에서 월터 화이트 역을 맡았던 배우 Bryan Cranston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Bryan Cranston은 이 드라마 전까지 중년 조역만을 계속 맡아왔던 배우였다. [브레이킹 배드]의 프로듀서였던 Vince Gilligan은 그를 알아보고 월터 역을 추천했지만, 제작자들의 반대가 심하여 뜻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John Cusack과 Matthew Broderick이 연달아서 월터 화이트 역을 거절하자, 결국 이 역은 크랜스턴이 맡게 되었고, 그 다음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은, Bryan Cranston은 누구보다 재능있고 열정적인 배우였다는 것이다.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둘이 필요조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John Cusack과 Matthew Broderick 둘 중 하나가 월터 화이트 역을 수락한 평행우주에서, ‘누구보다 재능있고 열정적인’ Bryan Cranston의 커리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일은 직접 경험한 Bryan Cranston은 운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 Cranston, to his credit, seems fully cognizant of his good fortune. “Luck,” he said, “is a component that a lot of people in the arts sometime fails to recognize: that you can have talent, perseverance, patience, but without luck you will not have a successful career.” (p.68)



자신의 인생에서 운의 영향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과학적 사고이다.


책에서 “Music Lab Experiment”라는 재미있는 실험이 나온다. 실험자들은 여덟 개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전혀 유명하지 않은 밴드들의 노래 48곡을 올려놓고 청자들의 별점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같은 곡이 한 사이트에서는 1위를 하고 다른 사이트에서는 거의 꼴찌를 기록했다. 연구자들은 “한 곡의 운명은 그 곡을 들은 최초의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하느냐에 따라 엇갈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p.31)


내가 이 실험을 재미있게 생각하는 이유는 실험자들이 일종의 ‘평행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덟 개의 평행우주에서, 나의 곡을 들은 최초의 청자들은 이 곡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이에 따라 이 곡의 운명이 바뀐다. 그런데 하나의 삶을 살고, 하나의 세계를 보는 우리에게는 '평행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통계적 사고에 미숙한 이유이다. 우리 삶에서 운의 영향이 얼마나 큰 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해야 한다.


일어난 일들, 쉽게 보이는 일들을 토대로 추론을 내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일컬어 ‘availability heuristic’이라고 부른다.


> The availability heuristic suggests that when we construct narratives about how the world works, we rely more heavily on information that happens to be more accessible from memory. But that almost guarantees that our accounts will be biased, since some types of information are far more readily accessible than others. (p.79)


 Availability heuristic은 우리가 성공한 이유를 우리의 재능과 노력에서 찾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쉽게 보이지만, 우리를 도와주는 뒷바람은 잘 느끼지 못한다.


> The availability heuristic biases our personal narratives in a second way, because events that work to our disadvantage are systematically easier to recall than those that affect us positively.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사고 중 하나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얼마나 운이 개입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공공’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The upshot is that although popular beliefs may remain at odds with reality for considerable periods of time, the consensus can flip with surprising speed once good arguments begin to find their footing. And those arguments can spread only one conversation at a time.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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