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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자아 superego Jan 25. 2022

공무원 인사발령 저한텐 연락안주셔도 됩니다.

- 조직의 시간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살기로 했다.

 매년 1월은 공무원의 정기인사가 있는 날이다. 승진을 하기도 하고 고생했던 부서에서 탈출하기도 하며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휴직을 했다가 복직하게 되는 직원들도 있다. 보통 정기인사가 있기 한 달에서 한 달 반 전부터 고충을 하거나 인사과에 상담을 요청하게 된다. 인사발령이나 복직을 위해 정기인사가 나기 적어도 한 달 전부터는 준비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처음이었다. 인사로부터 자유로웠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던 점이. 휴직했다가 복직했던 아이 엄마 동료의 문자를 받지 않았다면 '아 오늘이 인사 발표 날이었구나'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넘어갔으리라. 동료는 첫째 출산을 하면서 육아휴직을 했고 둘째를 출산하면서 육아휴직을 연장했다. 그리고 6급 승진할 시기를 맞추어 돌쟁이 둘째를 떼어놓고 복직을 했다. 대부분 그렇다. 내 승진 시기를 보고 복직을 하고 승진을 위한 평정기간 2년 정도는 거의 업무에 매진한다. 그래야 평점을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공무원 조직에서는 육아휴직 3년 중 2년을 쓰고 1년 정도는 남겨 둔 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남은 휴직을 한다. 그리고 남은 휴직기간 동안 급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어둔다. 나는 돌쟁이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올해 7살이 되는 아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시기에 돈도 벌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다. 물론 조직의 시간 속에서 내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승진에 맞춰 시간을 계획하고 활용하는 모습을 담담히 풀어냈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사실이 담담하지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내 삶을, 내 인생을 내가 계획하고 살았던 적이 있던가? 나도 한 때는 조직이 정해준 시간에 맞게 살았다. 아이는 어렸고, 자주 아팠고 엄마를 필요로 했다. 나도 그것을 알았지만 뭐랄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조직으로 돌아갔다. 일을 했고 승진을 하기 위해 조직이 정해준 시간 안에서 나의 시간 계획을 했다. 딴에는 정말 훌륭하게 잘 계획했다 싶을 정도로 기계처럼 직장과 집이 잘 돌아가게 설계한 것 같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은 고통과 힘듦도 있었다. 그래도 그냥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모든 우선순위는 조직에 복직해 승진하는 시기 동안 잘 굴러가게 내 주변 상황을 맞춰놓는 것이었다.


 이것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는 말을 더듬었고, 영유아 검진에서 신체발달을 위해 노력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휴직을 하고서야 알았지만 아이의 충치가 시작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자주 아팠고 피로했고 아침에 출근과 등원 전쟁을 치를 땐 진짜 미친 여자가 된 것 같았다.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갔고 죄책감으로 회귀하는 일상은 너무도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웠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모든 것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집중할  있는 사람'이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진짜 제 명까진   있겠다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선  인생의 시간을 내가 계획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조직이 정해준 시간 속에는 '나라는 인간의 가치, 나의 소중한 가치' 포함되지 않았다. 생각 없이 살아온 비참한 결과였다. 누군가는 그래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건강을 잃거나,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한 시간들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란 것을 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를 위한 생각엔 언제나 기회비용과 포기해야 하는 것의 가치를 냉철하게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조직으로 다시 돌아갈 테고 후배들보다 승진이 밀릴 수도 있고 업무에서도 좀 더 고전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조직의 시간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사는 법을 깨닫고 힘을 키운 내가 될 것이다. 100세 시대에 퇴직 후 그 힘을 키우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엔 너무 늦지 않겠나! 특히 공무원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더더욱.


 올해 1월 정기인사가 났다. 이젠 그들의 시간 속에 나는 없지만 나는 나의 시간 속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시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과 따듯하고 정성스러운 밥상, 아이와 함께 잡은 손, 잠자기 전 책 한 권만 더 읽자는 아이의 애교, 아름다운 사계절과 여행 그리고 활자 속의 엄청난 세계가 함께 있음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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