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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Nov 28. 2022

계산

남자는 ‘당기시오’ 문구가 붙어 있는 카페의 둔중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와 내부를 일별 하더니 곧 벽 쪽에 자리한 여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여자는, 남자가 격자무늬가 있는 출입문 밖에 설 때부터 알아보았다. 조심성 없이 의자를 드득- 빼내 앉기까지, 남자의 몸짓에는 무수한 말이 담겨 있었다. 여자는 그 말을 어렵지 않게 을 수 있었다.


"왜 지금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데?"

남자의 말에 여자가 대꾸했다.

"그런 얘기는 결혼이 진행되기 전에 혹은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진작 해야 되는 건데 왜 지금 하냐는 뜻이야?"

"내 말은..."

"내 말은?"

"말꼬리 잡지 마. 결혼식이 두 달 앞이야."

남자가 갑자기 숙제를 내미는 것 같았다. 결혼식이 두 달 앞이라는 사실과 그녀의 꿈이 아이 키우며 가정을 가꾸는 전업주부라는 것은 무슨 관계에 있는지 알아내야 하는 숙제.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어."

어젯밤에 둘은 늘 그렇듯 잠자리에 들기 전 통화를 했다. 통화를 하다 여자는, 다음 달부터는 외국어 공부를 시작할 거야. 혹은 적금을 새로 하나 들어야겠어, 같은 말을 할 때와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말했었다.

"결혼하고 나서 자리가 좀 잡아지면 나는 집에 있을게. 살림하면서 아이 직접 키우고 싶어. "

여자는 그 말을 하면서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아이를 마치 지금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게 조금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그런 감정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남자는 내일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집에 있을게-가 남자를 한숨도 못 자게 할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는 말인지 여자는 알지 못했다.   

    

불과 몇 주 전이었다. 남자는 내부 승진이나 시험으로 정식 공무원이 되는 길은 없는지 물었었다. 여자는 드문 경우지만 없지는 않다고 대답했고, 남자는 결혼하고 나서 내가 도와줄 테니 한 번 도전해 보라고 했었다. 여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공립도서관 사서인 여자의 직업에 남자는 큰 불만은 없었다. 시간상 여유가 있고 나름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너무 적은 보수와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장래 때문이었다.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도와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전업주부라니, 남자는 여자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전업주부가 되고 내가 외벌이로 산다는 건 우리 계획에 없었어."

남자는 말했다.

"내가 당장, 그리고 반드시 전업주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미였어."

여자가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 대화가 지금 바뀐 거 아니니? 요즘에 전업주부로 살겠다는 여자가 어딨어? 남자가 그렇게 하자해도 절대 반대하는 게 보통 여자들 아니니? 어떻게 전업주부로 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너의 이런 태도가 더 당황스럽다. 내가 집에 있겠다는 말이 너한테는 그토록 충격이었니? 네가 꺼려하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그걸 알려주면 좋겠어. "

     

남자는 깍지 낀 손에 얼굴을 바치고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모두가 알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말이 있다. 그것을 ‘예의’라고 이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런 말은 항상 약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화기를 꺼내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에 접근하는 것은 어리섞을 뿐이다. 네가 꺼려하는 거...? 아니, 그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 모든 남자가 꺼려하는 것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꺼려하는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 너도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야.

말의 역할은 그런 것이면 충분하다.

사랑이라는 빙산 아래에 있는 거대한 그 무엇에 굳이 ‘조건’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자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남자는 여자가 계속 말을 이어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남자는 빠르게 대답했다.


"네가 꺼려하는 걸 나도 꺼려하는 거야. 암튼 전업주부는 너의 바람이었다는 정도로 정리하자, 알겠지? “


여자는 팔짱을 끼며 상체를 뒤로 가져가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의 시그널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스쳐 지나갔다. 팔짱을 끼고 상체를 뒤로 할 때는 고개를 가로저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일 때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는 것이 맞다.       


청첩장이 이번 주에 나온다고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남자가 점심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여기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자고 했다. 여자는 알겠지? 에 고개를 끄덕이던 대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등은 여전히 등받이에 기대 있었다.

남자가 카운터로 가 샌드위치를 갖고 오는 동안에도 여자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남자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청첩장 이번 주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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