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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Feb 10. 2023

홋카이도 1.

설국

고등학교 때 ‘설국’을 읽으면서 꼭 여기를 한 번 가 보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면서 애틀랜타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닥터 지바고를 읽으면서 러시아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설국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당시로는 엉터리 같기만 했던 서사보다 눈이나 거리, 벌레가 기어가는 다다미방 같은 것에 대한 집요한 묘사와 그 모든 묘사를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일본식 니힐리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니힐리즘은 낯설고도 익숙했고 두 개의 이질적 감정을 묶는 것은 분명 ‘매력’이었다. 그 매력을 직접 보고 싶었 것 같다.


바보스럽게도 오랫동안 설국의 배경인 니카타가 홋카이도 어디쯤일 거라 생각했었다. 이번에서야 니카타가 동경 근처 일본의 중부지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설국’이라는 제목에만 오랜 시간 꽂혀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 무지의 깨달음이 홋카이도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지는 않았다. ‘밤 밑바닥이 하얘지는’ 엄청난 눈과 작은 노인들이 종종 다니는 온천은 그대로 홋카이도의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삿포르 행 버스

오후 세시쯤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일반 복장의 공항 종사자가 제복을 입은 사람보다 많이 보이는 신치토세는 한눈에 봐도 지방의 작은 공항이었다. 입국 대기 줄은 끝이 안보였지만 입국 심사를 하는 직원들은 민첩해 보이지도, 숙련돼 보이지도 않았다. 서두르는 기색은 더욱 없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심사대를 통과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딸아이는 핸드폰을 열고 핸드폰에 뜬 화면과 공항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더니 마치 와본 곳인 것처럼 능숙하게 버스정류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여행 대체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그때마다 딸아이는 능숙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 물으니, 내 실력 아니고 구 x 실력이지, 하며 웃었다.      


호텔행 버스 기사는 중년의 여자였다. 조금은 낡아 보이는 감색 제복을 입은 그녀는 여행객들의 행선지를 일일이 확인하며 버스 아래 짐칸에 캐리어들을 가지런히 실었다. 도착하는 지역의 역순으로 캐리어를 정리하는 듯했다. 캐리어가 크든 무겁든 그녀의 표에는 변화가 없었다. 우리 가방은 아주 컸다. 혼자 들기 어려운 캐리어를 그녀에게 맡기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녀는 아랑곳없이 캐리어를 들어 올렸다.  

일본은 버스요금을 하차하면서 현금으로 냈다. 기사가 운전석에서 일어나 현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었다. 자연히 내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쫓기는 기색 없이 내리는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며 고개를 숙였다. 승객이 다 내리자 그녀는 뒤따라 내려 실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짐칸에서 캐리어들을 꺼내주었다. 우리가 내리는 스스키노 역은 종점과 가까웠다. 거기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나이가 적어 보이지 않았지만 정류장마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는 한 50번쯤 고개를 숙인 것 같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도시외곽의 고속도로를 지나 도시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로 보였는데, 눈의 나라답게 정말 눈이 많았다. 스멀스멀 어둠이 내리고 있었지만 길 중간중간 빙판이 보였다. 제설을 안 했다는 사실이 의아했지만, 일본의 차들은 빙판길을 잘도 달렸다. 창문 밖으로는 아담한 일본 주택들과 층 낮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오래전 갔던 오사카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주택들도 일본 특유의 외관이 아닌, 북유럽에나 있을 법한 주택들이었고, 오사카에서 툭하면 보였던 신사도 보이지 않았다.

홋카이도는 아이누라는 고유의 종족이 살던 지역이었단다. 그 지역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강제 병합한 지역이라서 일본색이 옅고, 사람들의 특성도 조금 다르다고 들은 말이 실감되었다.

빙판 위를 잘 달리는 일본차들만큼 중형차가 안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도시 중심부로 오기까지 도로에 중형차가 없었다. 다음 날 삿포르 중심부에서도 중형차나 외제차를 보지 못했다. 대부분이 경차였다. 중형차는 호텔 주위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엄마를 위해서 이 여행을 계획한 딸아이는 우리가 가서 먹어봐야 할 음식들을 세세히 짜놓았다. 그 계획대로 호텔에서 짐을 풀고는 곧장 스스키노 역 근처의 징기스칸 식당으로 갔다. 호텔과 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손에 드는 계획도시라고 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도시는 잘 정돈된 바둑판 형태로 되어 있어 한 블록을 지나면 사거리 횡단보도가 나왔다. 이곳 사람들은 어떤 지점을 말할 때, 가로변과 세로변의 숫자로 좌표를 표시하듯 삿포로 중심부의 tv타워를 중심으로 동쪽 몇, 북쪽 몇이라고 한단다. 택시를 타서도 그렇게 설명하면 된다고 했다. 때문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는 것 그리 어렵지 않았다. 블록을 세며 징기스칸 식당을 향해 가면서 문득 걸음을 멈추자, 세상에! 아무리 봐도 여긴 외국이 아니었다. 그냥 서울이었다. 눈에 익은 간판과 매장들, 횡단보도 체계, 심지어 횡단보도 불이 바뀔 때면 장년층에게는 너무 친숙한 게임인 ‘겔라그’에서 총을 쏠 때 나오는 뽕뽕 소리가 나왔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익숙한 듯 생소한 거리를 지나 징기스칸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은 노포 같은 이미지였다. 좁고 허름했다. 허름한 것은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라 쳐도 너무 좁아 조금 놀라웠다. 하지만 그런 면적이 일본에서는 흔하고 익숙한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이후 가는 식당마다 대체로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주방을 맞대고 스탠드형 테이블이 있고, 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에는 서 너 개의 테이블이 있었다. 그 모든 자리들이 다 닥지닥지 붙어 있어 지나갈 때면 다른 사람을 치지 않기 위해 몸을 잔뜩 긴장시켜야 했다. 스탠드형 테이블은 거의 끼어 앉아야 되는 수준이었는데,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양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었. 그 스탠드에 끼어 앉아 일본사람이 아니라고 하자 주인은 아! 하더니 한국 메뉴판을 갖고 왔다. 사이드 메뉴에는 김치도 있었다. 우리는 다른 요리법의 양고기 두 가지와 맥주를 주문했는데... 그 맥주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었다. 삿포로 산이라는 맥주가 지금도 생각난다.

징기스칸은 가운데가 볼록한 철판에 양념한 양고기와 양배추 양파 등을 얹어 구워 먹는 요리인데, 양념보다는 고기 자체의 맛이 더 살아 있었다.

바로 옆 자리에 새로 들어온 손님들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게 들렸다. 20대 여학생들이었다. 오지랖 넓게 한국에서 놀러 왔냐고 물으니, -아니에요. 여기 살아요. 교포예요, 했다. 일본식 발음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정확한 한국말을 하는 교포 2세 아니, 3세 일지도 모른다. 한국말 참 잘하네요, 하니 배시시 웃는다.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비에이, 후라노

이틀째 여정은 버스 투어였다. 목적지는 삿르에서 내륙 쪽으로 죽 들어가 있는 비에이와 후라노. 비에이 후라노 투어는 한국인을 위해 출시된 상품이라고 했다. 버스에 올라보니 정말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에 맞게 가이드도 한국인, 그는 일본 유학을 왔다가 그대로 정착해, 몇 번의 이직 과정을 거쳐 가이드가 되었다고 했다. 가이드 생활에 만족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비에이와 후라노는 눈의 고장이었다. 장애물 없이 온통 눈밭인 서정적 풍경이 길게 펼쳐졌다. 달력에 나올 법한 풍경이었지만, 모든 이들이 예외 없이 그런 서정적 풍경에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거기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눈밭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나무 한그루에 스토리를 만들어 주고 나아가 관광상품으로까지 만드는 일본인들의 잔재주 같은 영리함이나 만능의 편의점, 그리고 집집이 간판처럼 붙어 있는 번호판 같은 것에 더 눈길이 갔다.  

후라노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숲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작은 일본식 가게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관광상품점이었다. 십여 개의 작은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는데, 이름표, 열쇠고리, 작은 인형 따위를 팔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에게 겨울이 아니면 비에이와 후라노 관광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그는 그때는 비에이에 눈 대신 밀이 덮여서 사람들이 그 밀밭을 보러 온다고 답했다.

비에이와 후라노는 명성 자체가 관광상품이었다.     

  

잔기와 일본어가 익숙한 미국인

날은 어두워졌지만 호텔에 잠깐 들러 옷만 갈아입고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나왔다. 이거 꼭 먹어봐야 해 엄마, 딸아이가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음식은, 삿포에만 있다는 ‘잔기’라는 중국식 프라이드치킨이었다. 일본에 와서 먹는 중국음식이 좀 우습기는 했지만, 삿포에만 있다니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는 그 식당 역시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인터넷으로 먼저 주문을 했는데, 아뿔싸, 배달주문이 되었다. 취소가 안 되어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간간이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거리는 대체로 어둡고 인적도 자동차도 드물었다. 마치 누아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쓸쓸한 풍경이었다. 그런 거리에서 허름한 선술집 같은 외관의 가게 앞에 사람들이 촘촘히 모여 있었다. 거기가 우리의 목적지였다. 의외의 그림임에는 분명했다. 딸아이는  줄을 헤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난 종업원에게 일본말을 못한다고 하자, 그는 기다리라는 표시를 하더니 이내 큰 덩치의 서양인을 데리고 왔다. 서양인은 가게 안의 다른 종업원들처럼 후줄근한 모습에 꼬질꼬질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딸아이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와 아이가 나누는 긴 문장의 영어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잘 됐다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엄마 아까 한 주문 취소하고 여기서 먹고 갈 거라고 했어, 하며 나를 가게 밖으로 이끌었다. 그 사이 줄이 조금 짧아져 다행이었다.


식당은 전날의 징기스칸 식당처럼 낡고 몹시 좁았다. 우리 차례가 되어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종업원은 미로같이 생긴 통로를 지나 다른 홀로 우리를 안내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몸을 옆으로 해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홀이었는데, 테이블이 6개 정도 있었다. 귀퉁이가 깨진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큰 볼륨으로 켜져 있었다. 깔끔이나 단정과는 한참 멀어 보이는 식당 안을 둘러보며 나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여기가 정말 유명한데 맞니? 아이는 대답 없이 큭큭대고 웃기만 했다. 일본식 노포인가..!

유명하다는 잔기와 마파가 쟁반에 세팅되어 나왔다. 큼지막한 닭튀김은 보기와 달리 닭다리살로만 튀긴 것 같이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었다. 유명세가 그냥 된 것은 아니었다. 맥주는 여전히 맛있었다.  

식당을 나올 때 서양인 종업원이 좁은 계단을 내려와 인사를 건넸다. 딸아이가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의 입에서 자꾸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 겸연쩍게 웃으며 영어로 정정했다. 아마도 일본어가 더 익숙한 듯했다.  그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미국이라 했다. 태평양을 건너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좁은 식당에서 일하는, 일어가 익숙한 이 미국인의 스토리가 어쩐지 궁금했다.

식당에서 나오자 딸아이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내가 그 미국인보다 영어를 더 잘해. 그 사람 영어 되게 못해. 다 잊어버렸나 봐.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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