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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Nov 08. 2021

센트럴 파크에서 길을 잃다


일요일 아침이면 집 근처에 Farmer’s market 이 열린다. 마트보다는 가격이 비싸지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매 주말이면 빠짐없이 찾는다.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집, 각종 버섯을 파는 집, 에어룸 토마토를 파는 집을 거치면 컴포스트*를 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일주일치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센트럴 파크로 향한다.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맨해튼 한가운데에 위치한 센트럴파크는 160년 전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공원인데,  가로 800m 세로 4,000m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도 공원인데 그렇게 다양한 사람과 볼거리가 있겠냐 싶겠지만, 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말과 마차를 빼고서도 이곳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낚시를 하는 이도 있고, 쿵후 운동을 하는 할머니도 있고, 책을 읽는 이 혹은 글을 쓰는 이도 있고, 새 구경을 하기 위해 망원경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버드 워처’라는 게 코비드와 함께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취미활동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센트럴 파크에 약 210종의 새가 서식한다고 하니, 160년 전 숲을 설계한 사람이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다만 주의할 점은, 크기만 큰 게 아니고 그 안에 호수며 비슷비슷한 나무며 잔디밭이 꽉 차 있어 나 같은 사람 - 객관적으론 방향감각이 없는데 주관적으론 감이 좋다고 믿는 사람 - 은 길 잃기가 딱 좋다는 것이다. 대부분 집 밖으로 나올 때는 목적지와 제한시간이 뚜렷하기 마련이라 혹여라도 길을 잃게 되면 골치가 아픈 터라, 웬만하면 가 본 길을 선호하고 잘 모르는 곳에 가게 되면 긴장을 바짝 하게 된다. 하지만 하늘은 푸르고 따뜻한 햇살이 콧등을 간지럽하는 오늘 같은 날, 조금 길을 잃어도 괜찮겠다 싶어 정처 없이 발걸음 닿는 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표지판 하나를 만났다. 구불구불한 길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보호구역으로 정해진 곳, ‘The ramble’. 관광객도, 높은 건물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마치 산속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벌써부터 부지런히 먹이를 모으고 있는 청설모들은 이곳 보관창고로 이용하고 있는지 손발이 바쁘다.




이제 정말로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싶은 순간, 좁은 길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기이한 관경을 목격했다.


‘여기 무슨 일이 있나요?’

맨 앞에 있던 짧은 갈색 단발머리에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여자분에게 물었다.


‘There’s great horned owl, do you want to see?’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10미터, 혹은 20 미터?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정말로 정말로 올빼미 한 마리가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익숙한 건지, 혹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건지, 놀란 기색 없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야생 올빼미, 오늘 계 탔구나. 팔뚝만 한 카메라 렌즈를 가지고 제대로 자리 밥은 이들도 제법 보였다.  


어느새 반복되는 일상에 느끼는 감사함보다 지루함이 점점 커져 갈 무렵, 길을 잃은 곳에서 우연히 나타난 올빼미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지뢰밭이 아니라 보물섬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다시 안겨주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면 언제나 흥미진진한 모험은 남들이 다 가는 정해진 길이 아닌 엉뚱한 샛길로 가면서 시작된다. 꼭 가지 말라고 한 길로 간다던가, 먹지 말라는 음식을 먹는다던가.


인생이 뻔하고 재미없다고 생각된다면, 오늘은 가보지 않은 길을 한 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붉은 뿔 올빼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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