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드라이버가 던진 말
친구들과 주말여행을 마치고 라구아디아 공항에 도착했다. 일요일 늦은 시간인 데다 새로 지어진 터미널이라 한산해서 어렵지 않게 집 방향이 같은 친구와 우버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의 SUV가 도착했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기사분이 직접 내려 우리의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셨다.
기사분과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고, 친구와 나는 여행에서 못 다 푼 이야기보따리를 열심히 풀었다.
친구가 먼저 내리고 차 안은 다시 정적이 흘렀다.
‘Are you Chinese?’ (중국 사람인가요?)
기사분이 물었다.
‘No, I am Korean’ (아니요, 한국 사람이에요)
처음 본 사람이 내게 중국사람이냐고 묻는 것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뉴욕에 사는 중국인의 인구가 워낙 많기도 하고, 가끔은 나도 중국사람과 한국사람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경우가 있으니까.
다시 정적이 흘렀다.
‘Where are you from?’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죠?)
내가 물었다.
평소 지하철 혹은 자전거를 선호해 우버나 택시를 자주 타는 편은 아닌데, 오늘처럼 차를 타게 되는 날엔 왠지 같은 차에 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진다.
도착지까지 남은 시간은 10여분, 나만의 게릴라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는 15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한다.
이전에도 방글라데시 출신의 우버 기사분의 차를 몇 번 탄 적이 있다. 한국인들이 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올 때 슈퍼 혹은 세탁소 영업을 했던 것처럼, 방글라데시에는 우버 운전기사를 통해 이민을 오는 것이 흔한 것인가.
한국에서 정장을 수입해서 방글라데시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 삼촌 이야기도 들었다. 그 삼촌 덕분에 방글라데시에 살 때는 한국 바비큐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 음식, 옷 모두 방글라데시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방글라데시에 대해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뉴욕에 사는 것이 어떠냐 물으니 참 힘들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이가 넷이 있어서 부인은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고 본인이 혼자 일을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고. 그는 하루 10시간 주 7일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한다.
다시 고향에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니,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이제 막 그린카드가 나왔고 아이들이 여기서 시작을 했으니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다 커 독립을 하고 은퇴를 할 때가 되면 그때는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머무는 말을 툭 던졌다.
‘Your country is your country.’ (너의 고향은 고향이니까.)
미국생활을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 일 것이다.
미국에 이민 온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고향에서 누리던 것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산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월급을 아무리 모아도 자신의 명의로 된 집 한 채 사기가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뿐 아니라 선천적으로 배운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고,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없고, 육아를 도와줄 직계가족도 없다.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직장생활을 버티는 것처럼,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마음에 품고 미국 생활을 버티는지도 모른다.
타지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 파이팅.